사랑만 남도록...
올해는 아이들과 어떻게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 작년까지는 아이들 한 녀석 한 녀석을 떠올리며 그 녀석에게 주고 싶은 칭찬 혹은 의미를 상장으로 만들어서 줬었는데 이상하게 올해는 다른 무언가는 없을까를 고민했다. 요 며칠, 아이들에게 잔뜩 삐쳐있었던 터라 ‘올해는 그냥 확! 아무것도 하지 말어?’ 생각했다가 나는 품위 있는 교사이며 곧 오십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이렇게 어린애처럼 구는 것은 결코 엣지 있는 행동이 아님을 떠올렸다.
‘난 품위 있는 교사이다. 나이 먹은 아저씨에서 어른으로 성장해야 하는 존재다. 난, 조금 더 엣지 있는 교사다. 그걸 잊지 말자. 그런데.... 뭘 주지....?’
선생님, 기말고사 준비 중에 이런 질문이 웃긴데... 시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녀석이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시는 무엇이냐고. 그걸로 한참을 이야기했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아이에게 물었다. 왜 그런 질문이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이번 학기 쌤과 국어 수업하면서, 시가 좋아졌거든요.”
생각해 보니 이번 학기에는 아이들과 시를 많이 감상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도 내가 좋아하는 시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학기를 시작할 때에도 시를 통해 마음을 나눴고 이번 학기에는 특히, 제페토 시인의 시를 읽고 우리도 댓글시를 창작하며 친구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웃기도 하고 눈물을 짓기도 하면서 그렇게 함께했으니.
‘시로 시작했으니 시로 마침표를 찍어보자. 올해는 상장 대신 시가 담긴 짧은 토막 편지를 써야겠다. 그리고 올해는 예쁜 책갈피와 핫초코를 준비해야겠다’,고 구상을 마무리한 후 곧바로 준비 시작!
집에 있는 시집들을 모두 펼치고 블로그에 올려두었던 시들이며 ‘구선생’님에게 위로가 되는 추천 시를 여쭤본다(?). 아차, 커피 한 잔 내리고 내 심금을 울릴 비지엠까지 준비 완료. 이제는 마음의 문제이다. 한 녀석 한 녀석을 떠올리며 어떤 시가 어울릴지 생각하고 시집이며 블로그를 뒤적거려 본다. 주저리주저리 쓸 필요 없이 시는 딱 네 행 정도, 메시지는 다섯 줄 정도로 하고 라벨지에 인쇄하는 것으로 갈무리하기로 한다. 그렇게 열여섯 토막 편지를 완성하고 나니 자정을 훌쩍 넘겼다. 이 작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도 많이 녹아내린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준비한 책갈피가 아이들이 읽는 책 어딘가에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핫초코는 두 개씩. 하나는 내가 또 하나는 친구와 함께. 미떼의 미덕은 ‘함께’ 마시는 것이니까. 그리고...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마음이 담긴 짧은 시와 토막 편지까지.
오십이 멀지 않은 요즘, 올해 내가 배운 게 있다면 ‘사랑’만 남겨야 한다는 것. 형식은 어떠하든 결국 아이들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한 녀석 한 녀석 ‘이름’을 부르며 준비한 선물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종강식을 위해 교실을 떠날 때 한 녀석 한 녀석을 꼬옥 껴안아준다. 포옹이 아니어도 된다. 악수 한 번, 주먹 인사 한 번도 괜찮다.
마침표 후 찾아오는 황홀한 슬픔. 올해도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