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월명동 대문 예찬론
늦은 밤은 아니었지만 늦은 밤의 풍경을 품고 있었던 군산 영화동을 보면서
군산은 아직,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만 그럴까 싶다. 코로나로 인해 꽤 많은 도시들,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숨을 고르고 있다.
2021년 1월 어느 저녁.
21년 1월, 느닷없이 군산엘 가고 싶어졌다. 아주 늦은 저녁은 아니었으나 코로나의 여파 탓인지 영화동은 매우 고요했었다. 거리는 고요했다. 밤이 되니 고요함은 쓸쓸함을 동반한, 처연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람들의 숨결로 발 디딜 틈이 없었을 영화동 거리는 그저 스산한 여백을 견디고 있는 듯했다. 처음 와보는 밤거리를 걷자니 마음 한편에 스멀스멀 불안함이 피어난다. 그걸 또 나는 견디며 걷고 있었다. 골목 하나를 돌아서자 그제서야 카페 하나가 보인다. 영화동 골목의 쓸쓸함을 쓸어담듯 거기는 불을 환하게 켜놓고 있었다. 당시에는 영과점 1925였는데 올해 다시 가보니 군산가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번 국어과 연수는 군산에서 하겠습니다.
21년 1월 처음 다녀온 이후 두 번 정도 더 다녀온 곳. 나에게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또 설령 있다고 해도 굳이 마다할 곳은 아니었다. 지난 여행과 다른 점은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연수로 오게 됐다는 점과 그래서 숙소가 호텔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라는 점 정도.
늦은 밤까지 국어과 선생님들과 토론과 협의가 이어졌다. 시시껄렁한 농담도 이어졌지만 대부분은 현 교육과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게 얼마만인지. 작년 백두산을 오른 이후 또 내 안에 크고 작은 오해들과 아쉬움이 쌓여가던 차에 이번 연수는 무척이나 의미 있었다. 연수의 끄트머리.
"우리는 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 이거면 됐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그것으로 이미 군산에서의 밤은 충만해졌다.
몇 년 전,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는데 정말 곤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호텔에서만 묵었었는데 이번 군산 연수 때 잡은 국어과에서 잡아준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다. 묵으러 온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배려와 애정이 느껴졌달까. 그리고 동네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니 좋은 점은, 아침에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아침에 일찍 눈을 뜨면 꼭,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리라 마음먹었다.
아침 일곱 시. 빠르게 씻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셨다.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월명동 자체가 관광지였기 때문에 관리가 정말 잘 되고 있었다. 숙소 앞에는 일본식 가옥이 있었고 조금만 걸으면 소고기뭇국으로 유명한 가게가 있고 그 앞으로 초원사진관이 있었다. 여기를 편안하게 활보하고 다닐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연수의 행운은 없으리라.
이곳 월명동, 영화동은 내가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 우리 동네를 닮았다. 이날 아침 내 마음을 훔친 건 다름 아니라 대문이었다. 같은 대문이 하나 없이 완벽하게 개성이 넘치는 대문들. 이 대문은 생김새가 직사각형이라는 점을 빼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양, 손잡이의 형태, 대문의 색깔 그리고 질감이 모두 달랐다. 특히 마당이 있는 집의 철대문은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슬며시 녹이 슨 부분조차도 멋스럽다. 예전 우리집 대문은 오래되어 곳곳에 녹이 슬어 있었다. 특히, 철문의 끄트머리는 절대로 구부러지지 않을 것만 같았음에도 둥글게 말려 있는 채로 녹이 슬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에는 이 철대문이 그렇게 단단하고 커 보였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내 키보다도 작아서 들어갈 때에는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다. 오래되어 녹이 슨 부분도 어째 마음 한편이 쓸쓸해진다. 그만큼 이 집도 나이를 먹었겠구나 싶어서. 적당하게 나이를 먹은 대문은 그만큼 여유가 있어 보인다. 여기부터는 사적인 공간이니 들어오시려거든 문을 두드려 주십시오, 바깥사람을 완벽하게 막아서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최소한의 경계만을 세우려는 듯 적당한 여지를 둔다.
마당 없는 집은 벽면에 바로 대문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 저 문을 열어도 집이 아니라 그냥 벽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런데 또 그런 대문 앞에는 으레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하다 못해 양파나 대파를 심은 화분이라도 놓여 있었다.
'여기는, 사람이 사는 곳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아. 벽이 아닙니다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을 걸듯 그렇게 말이다. 오늘 아침 월명동 대문에도 사람이 잘 가꾼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우리집 주인장은 매일 아침 내게 물을 주는 다정다감한 사람이라고, 화분이 대신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