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말고 ‘우리집’

잃어버린 우리 동네를 찾아서

by 이기적 소시민

아침 내 동네를 거닐며 새파랗게 어린 대문을 만나기도 했고 또 나이를 먹어 오래된 대문들과 만나기도 했다. 오래되었으나 꽃단장을 한 노중년의 대문과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꽤 많이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대문을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추측만 할 뿐 실제로 그 대문이 죽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대문도 없고 창문도 열려 있지만 이런 '열림'은
'열림'을 가장한 '폐쇄성'일 뿐이다.


길을 걷다 대문이 없는 집을 만나게 되었다. 세련되지 않았으나 투박해서 살가운 계단이 눈에 띄었다. 슬며시 올라가 보니 대문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집은 온데간데없고 '집이었던 곳'의 흔적만 남아 있는 듯하다. 이상하다. 분명 대문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집이었던 곳의 안쪽으로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었다. 대문이 없으니 거리낄 것이 없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집이었던 곳으로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슬며시 안쪽을 응시하려 해도 내 시선이 그리로 다가가질 못한다.


과거 이 계단으로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엄마가 올라갔을 것이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아들 녀석 둘은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난다고 뛰어내려 갔을 것이다. 퇴근하고 술 한 잔 걸친 아버지의 비틀비틀 발걸음이 이 계단을 통해 집으로 향했을지도 모르겠다. 툭, 툭. 작은 돌멩이 소리에 창문을 열면 나를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우리반 더벅머리 수철이가 볼이 발갛게 익어, 수줍게 편지를 건네고는 골목길 끝으로 내달렸을지도 모르겠다. 힘껏 뛰어가는 건 수철이 녀석일 텐데 왜 내 가슴이 이렇게 콩닥콩닥 뛰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수철이가 냅다 달린 골목 끄트머리를 오래오래 쳐다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집이었던 곳의 창문가에서 말이다.


창문 안쪽, 짙은 어둠의 수치를 가리려는 듯, 담쟁이는 한여름 그렇게 잎사귀를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집을 관리한다는 게 다른 게 아니라고. 그 집에 사는 것만으로도 집은 관리가 된다고 하셨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대문이 굳이 필요치 않다. 대문도 없고 창문도 열려 있지만 이런 '열림'은 '열림'을 가장한 '폐쇄성'일 뿐이다. 열려 있으나 닫혀 있는 곳이니 마음이 가서 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집을 보고 와서 그런지 유독 나이를 많이 먹은 대문들이 마음에 걸려 발걸음을 지체하게 한다. 저 대문 안쪽으로 '집이었던 것'만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어쩌지, 싶은 서운한 긴장감이 내 발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정화조 뚜껑 날아가지 말라고 벽돌 두어 개를 얹어놓은 손길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왜 서너 번 정도밖에 와보지 않은 동네의 대문을 보며 조바심을 내고 있을까 생각했다. 미화된 과거의 추억을 왜 기어이 이곳에 투영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잠시 동네 계단에 앉아 골목 끝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아, 나는 내 동네를 잃어버렸구나.’


그렇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이 투영된 동네가 없다. 내가 태어나 다섯 살 때까지 살았던 정읍 터미널 근처 집도 사라진 지 오래. 그 이후 십 년 이상 살아온 우리 동네도 이미 아파트가 들어선 지 오래다. 내가 뛰어놀았던 각양각색의 대문을 지닌 우리 동네는 벌써 십수 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고즈넉했던 전주 외갓집도 모두 헐리고 관광객만 드글드글한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우리집은 수백 가구가 똑같은 대문을 가진 아파트. 내 앞집과 위층,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동네에 살고 있다. 나는, 지금, 나는 잃어버린, 과거 내 것이었던 그 동네를, 여기에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 지긋한 대문들을 바라보며, 이 대문 건너편에 누군가의 온기가 남아있길 바라며 터덜터덜 골목길을 거닌다. 그 대문 구석, 아스팔트를 뚫고 빼꼼히 고개를 내민 풀들이 반가워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누가 보면 딸랑 하루 놀러 온 관광객이 미쳤나 보다, 여겨질 수 있겠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아침밥 짓는 내음이 골목골목을 채운다. 아파트 주방 후드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 말고 골목길을 채우는 밥 짓는 냄새는 정말 수십 년만이다.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저기서는 고등어를 굽는지 생선 냄새가 솔솔 올라온다. 조금 지나니 콩나물국 내음이 올라온다. 계란말이인가? 아니다 달걀 프라이다. 그렇게 순수한 음식 냄새에 흠뻑 취한 것이 얼마만인지. 그러고 나니 배가 고파졌다. 건강 생각한다고 아침을 안 먹은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오늘만큼은 하얀 쌀밥에 달걀 프라이, 김치 그리고 콩나물국이 차려진 밥상을 받아보고 싶어졌다.


조금 더 걸으니 누군가가 잘 가꾸는 듯 보이는 텃밭이 꽤 널찍하다. 연둣빛 상추가 한창 물이 오르고 있었다. 저쪽에는 대파와 쪽파, 옥수수도 조금 기르는 듯 보인다. 역시,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골목 끝에는 누군가의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저 자전거를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쏘다닐 그 누군가가 그려진다.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 집 앞에서 기르는 꽃에 물을 주는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 웃으며 농을 거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활짝 핀 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누님을 지나쳤다. 여기, 사람들이 살고 있다. 형과 아우로 보이는 두 녀석이 반바지, 반팔 체육복을 입고 학교를 가고 있었다. 서로 손을 잡지 않았으나 바투 걷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이가 나빠 보이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여전히 이 마을에 살고 있다.

고향은 결국 사람이다. 내 어릴 적 함께했던 동무들이, 그 동무들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다면 거기가 고향이다. 그러나 그 사람들을 품어내는 동네가 사라지면 결국, 고향도 사라지는 듯하다. 그래서 사람만큼이나 사람과 삶을 담아내는 공간도 중요하다.


동네 산책을 마무리하며,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은 부디 동네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똑같이 생긴 대문이 즐비한 그런 동네 말고 우리집다운 대문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그런 동네. 그 대문 너머로 밥 짓는 내음을 잃지 않는 동네, 어느 여름 대문 앞에 평상을 펴놓으면 옆집, 앞집, 뒷집에서 나와 함께 복숭아 하나 깎아먹으며 시시껄렁한 농담을 이어가는 그런 동네. 그런 동네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