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혼자 씻을 수 없다.
아이들의 성장을 직접적으로 보는 것만큼 즐거운 ‘월급’은 없다. 길 위, 아이들의 곁에서 단내 나는 입냄새를 나누고 땀방울을 섞으며 걷는 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루 30킬로미터 정도는 거뜬히 걸어낼 수 있는 싱그러운 연골을 지닌 행군팀원들이여, 그대들은 나보다 더 의미 있는 월급을 덤으로 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무례한 일일까.
5일 내내 직접 발로 밟아가며 걷는 아이들이랑 딱 하루 우리도 손으로 같이 걸었어요.
갱번마루 밥 짓는 어르신께서 ‘딱 하루 손으로 같이 걸었다’라고 하신 그 말씀이 화두가 되었다. 그냥 하는 소리로 치부하기에는 짧은 순간 그분이 보여주신 내공이 너무나도 단단해 보였다. 아이들에게는 지체 의식을 가르치고 있었지만 이 국토에서만큼은 나는, 걷는 사람과 걷지 않는 사람에 대한 극명한 의식 차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던 거지. 국토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아이들과 함께 걷는 일’이고 나는 엄연히 ‘걷지 않고 있었기‘에 의미에서 뒤처져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런 철저한 분리 의식으로 인해 난, 국토팀이지만 국토팀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같이 걷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딱 하루 밥을 하면서 손으로 걸었다던 어르신의 뒤꽁무니를 나도 따라고 싶어졌다. 모양이야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었으나 그건, 가짜일 뿐. 나도 정말 그들과 함께 ‘걷는 것’이 무엇인지 체화하고 싶었다.
우리 학교에서 국토 조장을 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다. 조장으로 함께 걷는다는 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정말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가기 전부터 아이들과 친밀해지면서 으쌰으쌰 해야 하고 가서도 힘들어하는 조 후배들의 짐을 자기 짐까지 포함해서 두어 개를 지고 걸어야 할 수도 있다. 걷는 내내 더워하는 후배들에게 부채질을 하는 건 선배들의 몫이었고 조장이 그 선봉에 서는 것이 당연한 문화이다. 울면서 걷는 녀석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도 해야 하고 또 정말 상태가 좋지 않은 녀석들이 보이면 적절하게 판단해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조원이 낙오된 상황에서도 조원을 포기하지 않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을 함께 끝까지 걸어야 한다. 그게 국토 조장이다. 보통 국토 조장은 고2 녀석들 중에서 뽑고 오롯이 전교생의 투표를 통해 조장을 뽑는다. 그래서 국토 조장으로 뽑힌다는 건 후배들과 동기들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서 뽑힌다면 그만큼 학교 생활을 잘했다는 척도가 되기도 하다. 교사들조차 ‘아하, 이 녀석이라면 조장감이지, 암만.’이라고 하든지 혹은 ‘아니, 이 녀석이 안 됐어. 어허. 아쉽네. 정말 국토 조장으로 적격인 녀석인데. 쯧쯧. 아이들이 인재를 몰라 보네.’라고 나름대로 논평을 나눌 정도이다.
고2에 한 녀석이 있다. 이 녀석 워낙 참한 녀석인지라 선생님들은 물론 동기들과 후배들에게도 신뢰받는 녀석이었고 그래서 투표로 국토 조장으로 뽑히게 되었다. 그러나 웬걸, 국토 몇 주 전에 다리를 다쳐 국토 참여가 불투명해진 상황이었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조장이 조원들을 챙길 수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과감하게 조장의 자리를 내려놓았다. 우리 학교 국토는 교육과정의 일환이기 때문에 개인적 취향에 따라 빠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다만, 걸을 수 없는 상황의 몸이라면 절차를 밟아 국토에 빠질 수 있다. 즉, 이 녀석도 국토를 빠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은 국토에 빠지지 않았다. 비록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걸을 수 있는 만큼은 걷고 나머지는 휴식지원팀이나 간식지원팀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있었다.
“조장을 내려놓아야 하는 건 정말 아쉬웠어요. 그렇다고 이 다리로 조장을 한다는 건 욕심인 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제가 국토를 아예 빠지면 저를 대신해서 조장하게 된 친구가 많이 힘들어져요. 그래서 저라도 어떻게든 함께하면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겠더라구요. 못 걸을 땐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친구들과 후배들을 도울 수 있어서 좋아요.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재밌어요.”
이 녀석의 말이 은근 심장 오른쪽 끄트머리를 툭, 치고 간다. 갱번마루에서 만난 어르신에 이어 교실 현장에서 만나는 제자 녀석에게서도 한 수 제대로 배운다. 국토의 끝자락 국토 대장은 맨 마지막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걸은 약 120킬로미터, 걸음으로 치면 약 15만 번의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매 걸음이 순탄치 않았습니다. 20년 국토 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해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 걸음을 혼자 걷지 않았습니다. 함께 걸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우리는 이 힘듦을 함께 걸었고 저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읽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을 바라보며 눈물을 터뜨리며 속으로 이렇게 읊조렸다.
'나도 함께 걸었구나. 걸음을 준비한 사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나도 이들과 함께 여기까지 걸었구나.'
함께 걷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누군가는 단 하루 손으로 함께 걸었고 어떤 녀석은 곁에 머무르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며 걸었다. 아이들이 쉬는 구간마다 물과 간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걸었고', 누군가는 그늘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떠난 후 화장실을 치우며 '걸었다.' 걸음의 모양새는 다 다르지만 우리는 결국 다 같이 '걸었던' 것이다. 물론, 이 깨달음은 나중에 어느 시점이 되면 다시 한번 읊조리며 생각하고 다짐해야 할 정도로 희미해질 수도 있겠다. 사람이 뭐 그런 게 아니겠는가.
일은 개떡 같아도 일하는 동료들만 찰떡같으면
개떡 같은 일도 찰떡이 된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녀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함께해 줘서 고마웠다는 녀석들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렇게 아이들과도 작별을 하고 나니 주변이 고요해진다. 모든 일이 끝나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그 고요함을 누리고 있었다. '우리.'
국토 전날을 시작으로 국토가 끝나는 오늘까지 함께했던 '우리.' 생각해 보니, 나 혼자 마음을 달리 먹었다고 해서 변하는 게 아니었다. 결국, 이 사람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내가 '함께 걷고 있었다고' 철석같이 믿을 수 있었던 거다.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했구나.
마침내 당도코자 하는 비누의 고향!
그곳이 어디인지는 알 바 아니며
다만
아무도 혼자서는 씻을 수 없다는
돌아갈 수 없다는
시 '비누' - 정진규
정진규 시인의 시 '비누'를 보고 꺼이꺼이 울었던 적이 있었다. 비누가 나를 씻어주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 나도 비누를 씻어주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시인의 읊조림이 내 마음에 닿아 큰 공명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국토의 끝자락에서 난, 내가 이들을, 이들이 나를 씻어주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여전히, 걷고 있었다. 혼자 말고 함께.
아무도 혼자서는 씻을 수 없다는 이 글귀 앞에 나를 세우고 나 또한 읊조려본다. 맞다, 우리는 혼자서는 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