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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남이 Feb 09. 2024

아이들끼리 다툴 때 부모가 취해야 할 현명한 대처법

해주는 육아에서 지켜보는 육아로



 쉬는 날 뒤늦게 핸드폰을 열면 회사나 동료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찍힐 때가 있다. 업무 관련 문의임을 직감하고 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면 십중팔구는 "괜찮아 해결했어, 쉬는 데 미안해"라는 대답이다. 회사원들은 공감하겠지만 그새 다른 사람에게 묻고 물어 조치를 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찾는 물건이나 필요한 서류가 보이지 않으면 찾아보지도 않고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바쁜 아내가 한 번에 받을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기필코 전화를 하고 카톡까지 남겨 놓는다. 얼마 후 아내에게서 오는 전화를 받고는 머쓱하게 대답한다. "이제 괜찮아, 해결했어" 



 전화 한번 안 받은 사이에 상황이 쉽게 해결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사실 그것은 '별것' 아닌 일이기 때문이다. 당장에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여겼지만, 조금만 숨을 내쉬고 살펴보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스마트폰 하나로 즉각 해결되는 시대에 젖어서 그런가. 언제부턴가 기다리는 게 참 어색하다. 문제가 바로 해결돼야만 직성이 풀린다. 감정도, 마음도 그렇다.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과 행동 때문에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던가. 차라리 그 일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여러 번이었다. 



 아이들의 머리가 커지니 서로 다투는 일도 잦아진다. 동생도 의사 표현이 확실해지면서 누나에게 지려고 하질 않는다. 말발 강한 누나와 목소리 큰 남동생의 전투는 정말 치열하다. 누구 목청이 더 튼튼한지 자랑이라도 하듯 신나게 랩 배틀로 디스전을 펼친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 또한 슬슬 열이 나기 시작한다. 참다못해 아이들 사이에 껴서 훈수를 둔다. 아빠가 끼면 낄수록 아이들의 흥분은 더 거세진다. 그럼에도 억지로 아이들에게 사과를 강요하고 각자의 잘못을 지적한다. 원래 자기 일 못하는 사람이 남에게 훈수는 잘 둔다고 했던가. "싸울 거면 같이 놀지 마"라며 아이들보다 더 유치한 멘트를 하고는 일방적으로 상황을 매듭짓는다. 아이들의 상한 감정은 외면한 채로 말이다. 



 '후지모리 헤이지'《지켜보는 육아》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지켜보지 않고 아이를 대신해서 해버리거나 전혀 기다리지 않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현명한 아이로 기르려고 열심히 하는 육아가 실은 장래 아이가 필요로 하는 힘을 빼앗아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의 교육은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고 할 정도로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 볼 수 있도록 내버려 두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필연적으로 만나는 땡깡이나 싸움도 사실 '별것' 아닌 일이다. 부부 싸움은 잘 만 하면서 왜 아이들한테는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 부끄러울 뿐이다. 아이들이 갈등을 통해 자신의 감정도 알게 되고 상대방의 입장도 헤아려 볼 수 있는 경험을 배우는 것이니, 오히려 다툼은 훈련의 기회일 수 있다. 바닥을 친 공이 더 높이 튀어 오르듯이 억울함과 서러움 같은 감정의 밑바닥을 경험해 봐야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릇도 생겨나는 게 아닐까. 공감이나 배려라는 산물도 결국 이런 혹독한(?) 과정을 지나쳐야만 얻을 수 있는 열매다. 소중한 건 원래 쉽게 얻어지는 법이 없으니까. 



 평소 아이들이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쌓여 늘 아이들 일상에 먼저 개입했다. 직접 경험하고 생각해 볼 시간과 과정들을 제약했다. 내 마음 편하자고 아이들의 감정은 외면한 채 불을 끄는 데만 주력했다. 싸우는 아이들의 상황은 무시한 채 정답만 요구했다. 스스로 자신들의 감정을 살펴보고 조절할 수 있도록 돕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한데, 하물며 감정 조절이 서툰 어린아이들에겐 더 그러했겠지. 이제는 아이들을 묵묵히 기다릴 수 있는 침묵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직면하고 이겨내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그러다 언젠가 이렇게 얘기하겠지. "아빠, 이제 괜찮아. 해결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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