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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남이 Feb 05. 2024

첫째 아이 유치원 졸업식에서 아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

잘 버텨내 줘서 고마워 

 2년 전 이맘때 여섯 살 된 딸이 대안학교 유치원에 입학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아내는 작은 수제케이크 가게를 차렸다. 고객이 의뢰한 대로 직접 제작하는 커스텀 케이크다. 미리 만들어 놓고 판매하는 공산품이 아니라 직접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상품이다 보니 심적 부담은 더 컸다. 개개인의 모든 입맛과 취향을 만족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린 빠듯한 자금으로 창업을 시작했기에 홍보나 마케팅은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던 터. 녹초가 된 몸으로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도 우리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됐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살아남기 위해서 아내는 온몸과 정신을 쏟아부었다.  



 사업을 시작하며 늘어나는 스트레스와 고단함보다 우리 부부를 힘들게 했던 건 바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내가 교대 근무를 하는 덕에 주간에도 아이들을 돌볼 때가 많았지만 역시 엄마의 인기는 이길 수 없다. 밤만 되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엄마를 찾아 부르짖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내가 집에 오면 아이들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엄마 껌딱지가 된다. 그러고 얼마 못 가서는 참았던 서러움을 감추지 못해 엄마에게 온갖 땡깡을 부려댔다. 그렇게 한참을 엄마의 모든 기운을 쏙 빼놓다 지쳐 잠이 든다. 화장도 지우지 않은 엄마 얼굴을 꼭 만진 채로. 자기 몸은 고사하고 두 아이의 응석까지 받아내느라 아내도 참 힘들었을 테다. 아이들을 재우고 다시 가게로 나가 새벽 미명에 들어오는 날도 부지기수였으니까. 



 엄마 아빠가 먹고살기 바쁜 탓에 아이들 유치원 생활에는 크게 관심을 쓰지 못했다. 특히 대안학교 유치원을 다니는 첫째 아이의 경우 과제나 준비물 등 하루에도 챙겨야 할 분량이 상당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린 무심하게 지나친 적이 많았다. 내가 집에 있을 땐 아내가 늦게 오고, 야간 근무일 땐 아내가 집에서 혼자 아이들을 챙겼기에 양육의 일관성 또한 없었다. 우리의 삶처럼 아이들의 일상도 불규칙했다. 묻지 않았어도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때문에 우린 아이들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이런 형국에 아이가 잘하기를 기대한다는 건 욕심이고 사치겠지. 우리는 그저 아이가 유치원과 학원을 잘 다니는 것에 안도했을 뿐이다. 아이가 어디 가서 무엇을 잘해 줄 필요도 없었다. 그냥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며칠 전, 첫째 아이가 다니는 대안학교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아내도 그날만큼은 일찍 가게 문을 닫고 나와 함께 졸업식에 참석했다. 2년 동안 아이가 생활했던 유치원의 일상이 영상으로 흘렀다. 영상 속 아이의 웃고 있는 모습이 유독 더 환하게 느껴졌다. 아이의 미소를 보는데 참 미안하고 고맙더라. 우리 부부가 신경 써주지 못했던 부분을 선생님들이 함께 메꿔준 덕인가. 선생님들께도 감사가 되었다. 그 와중에 아이는 '국어상'과 '성품상'을 받았다. 첫 번째 국어상을 탔을 때는 당연히 한 명씩 나눠 주는 건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올라가더라. 너무 대견하고 기특했다. 두 개의 상 모두 아이가 잘 배웠으면 하는 상이라 그런지 더 기뻤다. 언제 이렇게 큰 거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버틴 엄마처럼 2년이란 시간을 잘 감당해 준 우리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옆에 앉아 있던 아내도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다 끝내 눈물을 보였다. 엄마로서 부족했다는 죄책감과 사업을 하며 받았던 중압감이 서로 교차했겠지. 그날 우리 가족은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조촐한 파티를 열였다.  



 2년이란 터널을 지나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은 훌쩍 컸고 아내의 사업도 많이 안정되었다. 특히 나에게 있어 이 시간은 큰 변곡점이 되어주었다.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바닷가도, 놀이공원도 갈 수 있는 능력치가 생겼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과 국을 직접 만들어 내는 솜씨도, 잠이 오지 않는 아이들에게 자작 동화를 들려주며 잠을 재우는 비결도 터득했다. 만화를 보여주지 않고도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 수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엄마의 역할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 부딪혀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육아라더라. 엄마를 대신해 육아를 오롯이 전담해 봤던 일은 앞으로 내 삶에 더는 오지 않을 기회이고 축복이었다. 이만큼 소중한 가치가 또 있을까. 부족하지만 아빠와 함께 잘 기다려준 아이들에게 고맙고, 힘든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준 아내에게 더더욱 고맙다. 



 곧 있으면 첫째 아이는 초등학생이 된다. 둘째는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대안학교 유치원생이 된다. 우리 가족에게 달라진 상황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아이들이 클수록 손이 더 가게 되고 분주해질 것이다. 아내 사업 역시 더 바빠졌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이전에 비해 더 단단해졌다. 각자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이다. 원팀이 되어 서로를 믿고 연대할 것이다. 나 역시 올 한 해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조금 더 집중할 계획이다. 우리 아이들도 삶에서 마주하는 힘든 터널들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피할 수 없는 터널이라면 지혜롭게 지나길 바란다. 힘들고 어려운 구간을 지날 때마다 내면이 더 성장하고 단단해지기를 소망한다. 멋진 아이들로, 또한 멋진 부모로 다 같이 성장하는 우리 가족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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