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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남이 Mar 20. 2024

새벽기도를 다니며 깨닫게 된 것

기다리는 이유


일찍이 술과 담배를 시작했던 나는 성인이 되고부터는 집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데다 기분파인 탓에 많은 돈을 유흥에 할애했고, 이런 열정은 공휴일이나 명절 연휴에도 예외가 없었다. 자연스레 어릴 적부터 줄곧 따라다녔던 할아버지 댁에 가는 일도 줄어들면서 차 안에서 나눴던 부모님과의 유일한 소통도 끊겨 버렸다. 직장을 잡고 사회생활을 하며 술자리와 인간관계는 더 진해졌고 그렇게 술과 사람은 내 인생에 끊을 수 없는 질긴 족쇄 같아 보였다. 



새벽까지 음주 가무를 즐기다 집에 오면 엄마는 거실 소파에 누워계셨다. 주무시고 계신 엄마를 위함인지, 현실을 부정하고픈 나를 위함인지 그 순간만큼은 휘청거리는 몸을 최대한 부여잡는다. 그래도 양심은 있다. 정신을 차려 까치발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 이불속에 몸을 숨긴다. 엄마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을까. 난 씻기 위해 화장실도 드나들 수 없었다. 적막이 흐르는 것도 잠시 엄마의 인기척이 들린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 돌아온 아드님의 신발을 확인하셨는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난 안도의 숨을 내쉰다. 담배 냄새 깊게 절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자리에 눕는다. 그러고는 피곤함과 함께 밀려오는 헛헛함에 뒤척이다 잠이 든다. 



얼마 전 육아휴직을 하고부터 생전 가지도 않던 새벽 기도를 다니고 있다. 하루를 더 효율적으로 살고 싶은 의지와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영적 깨달음에 대한 갈구함이 만난 결단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잡고 싶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기도는 절로 나온다. 아내의 사업과 건강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공감 능력과 인격을 갖춘 지혜로운 부모가 되고자 기도한다. 특별히 나의 인간적인 허물과 연약한 기질들을 아이들이 닮지 않도록 간구하게 된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자식에게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 간절한 몸부림이다. 



아버지가 된 입장에서 자녀를 위해 기도할 때 깨닫는 것이 있다. 사람은 혼자 성장할 수 없다는 것. 태어나고 자라며 익어가는 과정이 누군가의 전적인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나 역시 누군가의 오랜 인고와 기다림의 시간을 거쳐 '지금의 나'로 서 있는 것이니까. 철이 없던 그때, 답이 없어 보이던 내 인생에 충분히 단죄를 가할 수 있었음에도 기다려 주신 것. 특별한 인생관도, 목표도 뚜렷하지 않던 나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참아 주셨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근심과 걱정에 휘몰리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법도 하지만 그럼에도 기도로 지켜봐 주셨던 그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지금의 내가 술과 담배 그리고 세상과 사람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당시 내 젊음과 청춘을 인정해 주고, 방황하던 그 시간까지도 묵묵히 기다려주신 기도 덕분이 아닐까. 



망각의 동물이기에 가끔 잊고 산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그 길목엔 꾸준히 인내하며 기다려 주신 엄마의 기도가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 나도 그런 때를 마주하겠지. 자녀들의 허물과 연약함으로 근심하고 때로는 먹먹함에 괴로워할 날도 올 것이다. 그럼에도 더 사랑하고 보살피며 기다릴 테다. 맑은 날만 있을 순 없기에. 비가 내리고 먹구름이 잔뜩 낀 날 일지라도 더 이해하고 수용하고 품어줄 것이다. 내가 받았던 그것처럼, 나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릴 것이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그리고 기도의 힘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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