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되었을까.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여느 병원이랑은 좀 다른 느낌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원장님 실 소파에 앉아 나는 선생님과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의사 선생님의 눈은 참 따뜻했고 나의 목소리에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여 주셨다. 한참 동안의 상담을 마친 후 엄마는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가 내가 좋아하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셨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좀 전에 다녀간 병원이 신경정신과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그 당시만 해도 신경정신과는 크게 조명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요즘처럼 심리 상담이나 마음 치료에 대해 그리 개방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부모님도 아마 오랜 시간 고심하셨을 터. 그럼에도 눈을 자주 깜빡거리고 어딘가 모르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해 보이던 내가 걱정되셨는지 엄마는 나름대로 큰 결단을 내리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원장님은 엄마에게 내가 '틱장애'라는 설명을 하시며 무엇보다 아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당부하셨다. 그 일을 계기로 나를 향한 부모님의 태세가 조금 바뀌시지 않았을까. 사실 그런 것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건 그날 엄마가 내게 사주신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집 여섯 살 난 둘째 아이는 또래에 비해 느리고 내성적이다. 말과 행동이 더뎠기에 다섯 살 때도 네 살 반 아이들과 생활을 해야만 했다. 언어가 잘 되지 않으니 점점 또래들과 함께 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소극적인 모습으로 변해갔다. 올해 초 대안학교 유치원에도 입학했지만 진취적인 학습 구조가 아직은 버거웠는지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에 하차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일반 유치원으로 다시 돌아와 자율적인 놀이 위주의 활동을 하며 조금씩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화요일은 언어치료, 금요일은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 선생님들 역시 공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이해하며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동안 아이가 느리다고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걱정한 것에 대해 아이에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그 자체로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데 아직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아이를 느리다며 예단했던 나 자신이 오히려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대안학교 유치원을 한 학기도 다녀보지 못하고 나온 것에 괜한 자존심이 상해 속상해하던 것도 아이에 대한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느리지만 묵묵하게 잘 걷고 있는 거북이가 못마땅해 속도를 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모든 것이 나의 성급한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오히려 나의 마음도 한결 여유를 찾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별것 아닌 일들이 상당히 많다. 어릴 적 내가 갖고 있던 틱장애도, 아이의 발달이 더딘 것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들이다. 뿐만 아니라, 육아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자잘한 문제들도 지나고 나면 대부분이 자연 치유되어 있을 일들이다. 그러니 살면서 마주할 많은 문젯거리 앞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시온이가 되길 기도한다. 어려움 앞에서도 문제를 보기보다는 가능성을 보며 용기를 낼 수 있는 멋진 남자로 성장하길 소망한다.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받고 있는 아이를 기다릴 때마다 내가 올해 휴직을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아이를 집중적으로 보살피며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런 것들을 해보겠나. 시간이 지나면 이 시절이 매우 귀하고 감사했던 시간이 될 것이다. 아이도 훗날 아빠와 치료센터를 오가는 차 안에서 먹던 아이스크림을 회상하며 지금의 나처럼 미소를 지을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