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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대디 Nov 23. 2023

디지털노마드 시대에 공무원으로 산다는 것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온 2009년 1월. 아직 스마트폰과 카카오톡도 존재하지 않던 그 시절에 난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취업을 걱정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멋져 보이는 '군필자', 복학생의 낭만을 포기하고 노량진으로 향한 이유는 그 당시엔 평생직장의 개념이 존재했고 그만큼 공무원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기 때문이다.


공무원만 되면 앞으로 결혼과 주거 문제, 퇴직 후 연금과 같은 여러 가지 혜택이 보장된다는 그야말로 '꽃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게 당시 사회 기조였다.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그다지 인생에서 이룬 것 없던 평범했던 난 더욱더 평범함 삶을 살고자 노량진 수험가를 택했던 것이다. 공무원만 된다면야 그깟 대학 졸업장이 뭐가 부러우랴. 2년이란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2011년, 스물일곱 나이에 드디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취업 전선의 열기가 뜨거웠던 그 당시에 이루어낸 이 작은 업적은 노력한 수고에 비해 과분한 포상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수입 덕에 각종 카드사나 은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고객이 되었고, '튼튼한 직장'이라는 메리트 때문인지 소개팅도 원 없이 해봤다. 사회 초년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듯, 자신 명의의 신용카드로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놀고 싶은 거 논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가. 이렇게 30년 이상을 지낼 수 있다니 모든 것이 정말 뿌듯했다.


그러한 안정감과 짬밥이 쌓인 끝에 나는 벌써 13년 차 공무원이자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먹고 싶은 치맥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사러 마트에 가고, 내가 하고 싶은 취미 대신 아이들의 학원비를 더 걱정하는 그야말로 정말 평범한 아저씨로 살고 있다.  

   

평범한 길을 택한 후 예정대로 평범한 가장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자문해 본다. 20년 뒤, 퇴직을 한 이후에도 이렇게 평범할 수 있을까?! 평범함을 보장하는 직업을 택한 후에 따라오는 '평범함'이라면, 그것은 사실 진짜로서의 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욱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시대를 살면서 막연히 평범함을 기대하고 사는 건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처사가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다.     


과거 우리 부모님 시대에는 대학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회사나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보장되고 남들 다하는 '청약저축' 하나 들어놓고 살다 보면 외벌이 가정이라도 '내 집마련' 정도는 거뜬히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번 맺은 회사의 연을 천직이라 여기고, 한평생 영혼을 갈아서라도 충성할 수 있는 의리를 지킨 아버지들이 대다수다. 퇴직 후 얼마 남지 않은 삶은 그리 풍족하진 않더라도 매달 나오는 연금으로 지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1년만 지나도 마치 시간이 진화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월급쟁이의 성실함으로는 버틸 수 없는 사회가 된 지 오래,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생계에 전선으로 뛰어드는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팬데믹 이후 오피스빅뱅을 외치며 회사라는 공간의 의미 또한 모호해졌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취업 선택의 기준은 평생직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틀리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더 이상의 정규직이란 개념도 사라졌다. 대프리랜서의 시대가 온 것이다.     


남자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젊은 피로 뭉친 군생활, 2년이란 시간은 매우 강렬하다. 폐쇄적 구조와 위계질서 속 일사불란한 삶을 산다. 시간이 흐르면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동등한 계급의 시간과 지위가 부여된다. 그렇기에 각자의 군생활의 기억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선임'이라는 시간과 영화를 마음껏 누린다. 군 생활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그리고 어떤 이는 그 안에서 전역 이후의 삶을 '미리' 준비한다. 군 생활이 곧 끝날 것처럼. 전역 이후 누구의 삶이 더 빛날 것인가는 불 보듯 뻔하다.


우리는 현재의 삶과 상황에 안주하기 쉽다. 편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현재는 현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삶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결국엔 흐르고, 지금 이 순간도 흐르고 있다. 아파본 사람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한다. 잃어본 사람만이 존재의 의미를 안다고 했다. 분명, 나에게도 평범함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을 마주할 날이 오겠지. 2년이란 군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던 어느 군인처럼 나도 마지막에 웃는 자가 되고 싶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를 통찰할 줄 아는, 나무보단 숲 전체를 바라보며 큰 흐름을 읽는 혜안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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