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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훈남대디 Dec 15. 2023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가치의 차이

소중한 반려견 '뭉치'를 그리며


사춘기가 찾아오고 외모에 관심이 극에 달했던 고등학교 1학년. 당시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잠바가 있었다. 바로 '노티카'라는 브랜드인데 '국민교복'이라 불릴 정도로 또래들 사이에서 인기였다. 가격도 비싸서 더 폼났던 그것을 갖기 위해 엄마에게 '딜'을 하나 제안했다. 당시 키운 지 얼마 안 된 강아지를 다른 집으로 보내도 된다는 조건으로 잠바를 사달라고 말이다. 강아지를 처음 키워봤던 엄마는 여러 가지 문제로 힘들어하며 더 정이 들기 전에 아빠에게 다른 곳으로 보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던 터라 나는 그 틈을 노린 것이다.


그렇게 엄마와 은밀한 협상(?)을 마친 끝에 잠바를 손에 넣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강아지는 우리와 오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보내졌고 난 간지가 흐르는 그 잠바를 입었다. 새 옷 냄새 풀풀 풍기며 뿌듯한 마음으로 학교를 갔다 왔다. 하지만 그러한 쾌감도 잠시,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겉치레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학교 갔다 돌아오면 따라다니던 강아지가 보이질 않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강아지가 없는 서운함보다는 나로 인해 다른 집으로 보내졌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이 내 마음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몇 장 있지도 않은 아이 사진을 바라보다 끝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불과 3개월이란 시간 동안 정이 들은 건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우리에게 3개월의 시간도 이렇게 큰 여운을 남기는데, 그 아이에게 3개월은 얼마나 컸으랴. 영문도 모르고 주인이 바뀌어버린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눈앞에 순간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섣부른 판단을 내린 결과는 결국 뼈저린 후회로 되돌아왔다. 가슴이 먹먹하다는 기분을 그때 처음 느껴본 것 같다. 


긴 고민 끝에 아빠 엄마께 용기를 냈다. 잠바를 안 입어도 되니 다시 강아지를 찾고 싶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무리한 요구였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 뻔뻔함을 택하기로 했다. 이미 건너간 집에서 안된다고 하면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아빠는 다시 전화를 하셨고, 최선을 다해 내 마음을 대변해 주시며 정중히 사과를 드렸다.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것을 허락해 주셨고 우리는 그 즉시 강아지를 찾으러 갔다. 나를 격하게 반겨주던 꼬리와 파르르 떠는 아이의 몸을 꼭 안고서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얼마 전 딸아이와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대뜸 사탕을 꺼내 오더니 말한다. 이번 주말에 사주기로 한 미로게임을 사지 않는 대신에 사탕을 사면 안 되냐고 말이다. 칭찬스티커를 채울 때마다 아이가 평소 갖고 싶어 했던 장난감을 사러 가는데, 아이가 순간 사탕을 먹고 싶었나 보다. 평소 사탕만큼은 쉽게 허락하지 않는 아빠에게 먼저 딜을 하는 걸 보고 역시 "그 아빠의 그 딸이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스티커를 채우고 그토록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고작 사탕 하나랑 바꾸려고 했던 아이 모습에서 그 시절 내 모습이 떠올라 한참을 웃었다.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유혹과 이익 때문에 더 소중한 것을 놓칠 때가 있다.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의 시간을 포기하거나, 당장 눈앞에 이익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단번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당시 강아지를 다시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반려견이 인간에게 주는 따뜻한 우정과 위로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겠지.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정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우리 아이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 그리고 그 강아지 '뭉치'는 우리와 행복하게 살다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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