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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opepperzzang Aug 25. 2020

02/ 아니, 이렇게 쉽다고?

검사 결과부터 약 받고 집 가기.

정형외과에서 류마티스 내과로 가기까지 우여곡절과 흘러간 약 두 달의 시간이 있었다.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일단 먹고 있으라며 정형외과에서 처방해 준 소염제와 진통제를 먹으며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아프던 손목은 어느새 팔로, 다리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단언컨대 이건 나를 엄청 싫어하는 누군가가 내가 자는 모습이 고까워 두들겨 팬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스쿼트 오백만 개, 팔벌려뛰기 오천만 개를 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나는 운동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전자가 확실했다.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그 길이 정말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향해 가는 길 같았다. 당시 살고 있던 집에서 병원까지는 버스 타고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그러니까 경기 버스의 종점과 종점이었다. 덜커덩거리는 버스의 끝자리에 앉아 허망하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다 보니 어느새 병원에 도착해 있었다.


결과는 류마티스 관절염이었다. 염증 수치 자체도 높지만, 다른 안 좋은 것들의 수치도 높기 때문에 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셨다. 결과가 나오기 전 나에게 주어졌던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틈만 나면 검색을 해 봤기 때문에 약은 평생 먹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완치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 둬서 그런지 결과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부모님이 들으면 놀라겠다, 정도의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담담하게 말해야 하나. 아니면 울면서 말해야 하나. 


자가 면역 질환이고 희귀 난치성 질병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산정 특례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고, 이걸 받으면 국가에서 90 퍼센트 정도 병원비를 지원해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간호사 선생님이 알려 주시는 대로 어영부영 서류를 작성했다. 평생 아플 사람 치고 내 반응이 너무 무덤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부모님이 다 맞벌이를 하시는 바람에 매번 병원에 혼자 와서 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고, 진료를 받았다. 그래서 어쩌면 더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됐을지도 모른다.


서류 작성과 병원비 수납을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료 잘 받았냐, 결과 어땠냐는 말에 나 류마티스래,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반응은 생각보다 무덤덤한 걱정이었다. 어떡하냐. 약 잘 먹고, 관리 잘해야겠다. (미리 말하지 못했지만 시니컬한 반응은 집안 내력이고, 가족들 성향이 전부 개인주의적이다.) 그래서 그냥 무덤덤하게 전화를 끊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봤을 때 엄마가 이 말을 듣고 울거나 너무 속상해했다면 내가 감당하지 못했을 것 같다.


병원을 나와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평생 약이라고는 제일 많이 받아 본 게 일주일 치 감기약, 나는 그것도 다 못 먹고 버리기 부지기수였다. 어릴 때부터 쓴 거라고는 질색하고 약 먹는 것도 세상에서 제일 못했던 내가 한 달 치 약을 뭉텅이로 받았다. 꾸역꾸역 가방에 쑤셔 넣고 나와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 학교는 시골짝에 처박혀 있는데 병원 근처는 번화가나 다름없었다. 하필 대학 병원이라 옆에 대학교도 붙어 있어 학생들이 우글우글했다. 나는 이렇게 뭉텅이로 약을 타고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저 자식들은 뭐가 좋다고 웃고 있어! 할 정도로 우울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 시끄러운 아우성 속에 나 혼자 적막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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