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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May 18. 2022

비카네르 사막으로_EP1

또다시 인도

돌아왔다. 인도에 대한 여행자들의 평가는 극명하다. 좋거나 싫다. 그저 그런 중간은 없다. 우리 역시 인도에 도착하고 일주일은 괴로워했다. 도로를 점령한 소떼들, 불편한 대중교통 무질서와 매연, 수행자라는 이름으로 거리 곳곳에 포진한 불결한 사두, 눈살을 찌푸릴 일들만 가득했다. 뭄바이 같은 대도시는 뿌연 매연과 넘쳐나는 사람들로 제대로 숨 쉴 수 있는 공간조차 없다 느껴졌다. 시골은 조금 달랐다. 쓰레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거나 동물들이 제멋대로 인 것은 똑같았지만 인구 밀도가 낮아지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우리는 앞서 두 달 동안 북부 여행만 하는 바람에 라자스탄과 남부의 케랄라 지역을 놓친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한번 더 비자를 받고 인도로 향하기로 했다. 다시 인도를 찾다니…. 우린 이 나라를 좋아하게 된 여행자였다.


라자스탄은 알록달록하다. 옛날 페르시아에서 인도로 넘어오는 관문이기도 한 곳은 사막을 품고 있어 그 흙빛이 가득 한 도시들은 그 색을 배경 삼아 무엇이든 더 다채롭게 표현했다. 옷, 신발, 집, 성채의 조각까지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색색깔의 도시들은 이름부터 블루시티, 화이트 시티, 핑크시티로 불려졌다. 우리는 그중 아무 이름도 없는 비카네르라는 작은 도시로 향했다. 낙타 사파리 가이드를 모집하는 호스트와 연락이 닿았기 때문이다.


5월의 델리는 덥다 못해 살인적이었다. 관광은커녕 밥을 먹기도 힘들었다. 식당을 고를 때도 문이 닫혀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닫힌 문은 에어컨을 틀고 있다는 뜻이 기도 했다. 델리에서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비카네르는 좀 덜 하겠지. 사막으로 가면서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극심한 더위로 머리가 고장 난 것이 틀림없다. 비카네르로 가는 야간 버스를 탔다. 밤새 경적을 울리는 침대버스는 창문도 닫히지 않았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긴 해도 흙먼지를 함께 뒤집어써야 했다. 얼굴이 꺼끌 거리는 느낌이 좋지 않다.

비카네르에 도착해 첫발을 내딛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새벽 공기는 서늘하고 깨끗했다. 조용한 도시를 가로질러 사파리를 운영한다는 요기 아저씨의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아침 9시가 다 되어 가는데 우리를 맞아주는 이가 없다. 4층 높이의 건물은 방문들로 빼곡했는데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인기척이 들려 고개를 돌리니 다리가 세 개밖에 없는 강아지 한 마리만 온 집을 헤집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낮은 자세 기어 온다. 아픈 강아지를 볼 돌 정도의 주인이라면 인심 좋은 아저씨 틀림없었다.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이곳의 주인인 요기 아저씨가 나온다. 1미터 90은 족히 될만한 큰 키에 부스스한 얼굴로 막 일어나 큰 눈을 껌뻑거린다. 먼저 아침부터 먹자며 슬리퍼를 질질 끌고 부엌으로 향한다.

“낙타 사파리에 대한 기대가 커요!”

나는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손님이.. 줄어드는 바람에… 낙타 사파리는 없어졌어요..”

느릿하면서도 인도식 영어같지 않은 유창한 발음이었다.

“분명 워크 어웨이에서 쪽지로 얘기할 때는 낙타 사파리라고 했는데요”

“ 아무튼 지금… 낙타는 없어요..”

“말을 돌보는 일도 있던데요”

“말이나 다른 동물들도.. 다… 팔고 없어요..”

이거 완전 사기꾼 아니야?  등골이 쎄 다.

“그럼 우린 무슨 일을 해요? “

“사막으로 일단.. 가 보고 결정합시다..”

찝찝한 기분을 떨질 수 없다. 길상이 역시 자초지종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사막은 보고 돌아가야 했다. 아침을 대충 먹고 요기 아저씨는 신발을 갈아 신는다. 그는 본인의 운동화와 우리 샌들을 번갈아 본다.

“괜찮겠어요?”

“뭐가요? 우린 문제없어요”

싱거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장기매매 괴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길 바라며 마힌드라 SUV에 올라탄다.  



사막으로 향하며 계약조건을 이야기했다.

1. 사막에서 새벽 5시부터 아침 10시까지 일하기

이것이 전부였다.


“오늘 사막을 한 번 보고, 2-3일 정도는 숙소에서 날씨 적응을 한 다음 본격적으로 사막에서 일하는 것이 좋아요. 모레쯤 일주일 치 음식을 줄 테니 그곳에서 지내면 돼요. 낮은 더우니 새벽 5시부터 아침 10시 정도까지 텐트 정리와 주변의 울타리를 만들어줘요. 나는 손님이 있을 때마다 그곳으로 갈 거예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일주일 치 식량으로 사막에서 살아남으면 된다는 거잖아? 자신 있었다. 사막 아래 텐트에서 별들을 보며 잠들겠지. 손님들이 오면 음악을 틀고 음식들이 나오고 아라비안 나이트가 펼쳐지겠지. 남편도 자신 만만해한다. 여행 9개월 차, 이젠 사기꾼이나 어이없는 상황에서도 대처할 능력이 충분하다는 자만심이 몰려오는 시기이기도 했다.   


숙소에서 출발한 지 30분쯤 되니 허허벌판의 모래사막이 갑자기 나타났다. 마을을 유유히 지나고 있는 참이 었는데 집과 사람들은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누런 흙빛의 사막이 펼쳐졌다. 에어컨이 풍풍 나오던 차 안에서는 밖의 더위가 실감 나진 않는다. 멀리 지평선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쳐다보며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은 텐트와 창고, 진흙으로 지은 집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당황한 길상이의 억지웃음


‘이곳이군’

차문을 열고 발을 딛자마자 뜨거운 열기에 화들짝 놀랐다. 차문을 열었다기보다는 지옥문을 연 것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요기와 달리 우리는 샌들 안으로 뱀처럼 스며드는 뜨거운 모래를 털어내려 허공에 발을 휘두르며 뛰어가야 했다. 목적지는 한 곳, 창고 지붕이 만들어낸 작은 그늘 안으로 전 속력을 다해 뛰어들어갔다. 우리에게 운동화로 갈아 신으라 말해주지 않은 아저씨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는 앞, 뒤, 옆이 꽉 막힌 좋은 운동화로 사막 곳곳에 널브러진 텐트를 정리하며 우리를 슬쩍 본다. 못 이기는 척 나가보지만 짜증 가득 일그러지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다. 아니 짜증이 아니라 더위로 견딜 수 없는 표정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겠다. 평생 생길 미간의 주름은 이곳에서 다 만들어냈다. 내리꽂는 햇볕과 한껏 달아오른 모래가 얼마나 뜨거운지는 말도 마라다. 모래 고문이 있다면 이런 방법일 것이다. 연기가 나도록 달아오른 프라이팬 위를 걷고 있는 듯했다. 몇 분은커녕, 30초도 버티기 힘들다. 우린 결국 다시 그늘로 뛰어들어와 멀리 사막만 쳐다봤다. 남편은 숨이 잘 안 쉬어진다며 벌써부터 엄살을 부린다. 크게 심호흡을 해보지만 들숨의 공기에 현기증만 났다. 요기 아저씨는 뜨거운 호흡이 익숙한 듯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대체 나는 여기 왜 온 것인가? 뜨거운 맥반석 계란이 된 기분이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익어 길상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도 제대로 들 수 없었다.

일할 의지를 잃어버림

“여기서,, 일 을 하란 말인 거죠?”

“응. 할 수 있겠니?”

“아니요. 호텔로 가고 싶어요. 당장요”

“하하하하 거봐 내가 덥다고 했잖아…”

아저씨의 웃음이 얄밉다. 아무리 덥다고 한들 이런 더위는 내 상상밖이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머릿속에는 집으로 갈 생각밖에 없었다. 우린 인도에 머무는 동안 포장된 생수가 아니면 절대 먹지도 않는데(림빅의 히말라야 물은 예외다) 남편은 자동차 짐칸 안의 항아리에 든 물을 망설임 없이 벌컥벌컥 퍼 마셔댔다. 평소 위생에 민감한 남편이 (나보다 민감한 편) 살아보겠다.... 항아리 속 물은 분명 미지근했을 텐데 내 목에 닿은 그 온도는 얼음이 띄워진 냉수같이 차갑고도 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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