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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잠 들기 전 열리는 머릿속 극장

by 시옷맨션 인사이트

잠들기 전 개운하게 샤워를 한다. 뽀득뽀득 머리를 말린 후 책 한권을 들고 침대로 간다. 책을 펴고 집중하는 것도 잠시, 자야 할 시간이라며 불을 끄고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를 취하며 눈을 감는다.


그때, 머릿속 극장이 열린다.


이 극장에서는 대부분 근래에 내가 겪었던 일들을 상영한다. 오늘 친구와 밥을 먹으며 수다떨던 일, 우연하게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는데 할인행사를 진행해 기분이 좋았던 일, 축구를 하면서 내가 기가 막힌 골을 넣었던 일. 주로 기분 좋았던 일이다. 그래야 좋은 느낌으로 잠들 수 있으니까.


가끔은, 아니 자주, 나빴거나 부끄러운 기억도 재생되곤 한다. 대학교 발표시간에 영어문장을 만들지 못해 모두들 앞에서 어버버 거렸던 일, 친구들과 술에 취해 고성방가 하다 어르신에게 혼난 일, 소개팅에서 어버이날 선물을 사러가야한다는 상대방에게 퇴짜를 맞은 일. 하지만 이런 상영은 이내 종료된다. 조금 이야기가 깊어질라치면 나는 이불킥으로 그 극장을 문닫게 해버리니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으며,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은건 당연하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필름에는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불현듯 생각나는 '조금 덜 좋은' 기억들을 자체 편집하는 것보다 안고 가야하는게 맞다. 그것들이 예측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상황을 주시하게 하는 비상벨 역할을 하고 있을테니까.


잠들기 전 상영하는 내 머릿속의 극장에서 힘들었던 장면들이 재생된다고 해서, 극장을 문닫게는 하지말자. 그 기억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비로소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이 찾아올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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