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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취미가 독서라는 것

얼마 전에 다녀온, 회사에서 실시한 힐링프로그램에서 있었던 일화가 생각나서 끄적여본다. 업무에 찌들고 지쳐있는 직원들을 위해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라는 취지였고, 정말로 나는 '힐링'을 하고 돌아왔다. 힐링프로그램의 시작은 여타 이런 프로그램이 그렇듯, 처음 본 직원들과 어색함을 푸는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이 먼저다. 대개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에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끔하는 '호구조사'를 아주 완곡하게 진행한다. 스무고개식 답변을 진행하기도 하고 그냥 대놓고 대화를 통해 알아보라고 하기도 한다.


내가 참여한 아이스 브레이킹 시간은 '나를 맞춰봐'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조그마한 쪽지에 나에 대한 설명을 다섯 개 정도를 쓰고 추첨함에 넣는다. 추첨함에서 뽑은 쪽지를 조원들이 함께 읽어가며 누구에 대한 설명인지를 유추하는 아주 간단하고도 거부감이 없는 게임이었다. 조원이 누군지 맞춘 후에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쓴 항목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생겨 짧은 시간에 친밀도를 올리기에는 적합했다.


나에 대해 어떤 내용들을 썼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흔하디 흔한 내용들을 적었던 것으로 어렴풋하게 생각나는데, 확실하게 적은 한 가지는 '독서를 좋아한다'는 내용이었다. 쪽지의 주인이 나로 밝혀지고 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제법 웃긴 상황이 발생했다. 몇몇 직원들이 까르르거리더니 나에게 진짜로 독서를 좋아하는지 재차 물어봤다. 아마 내가 독서와는 거리가 있게 생긴 모양이다. 책 읽고 독후감도 쓰고, 때때로 글도 쓴다고 말했더니 취미를 독서나 글쓰기(?)로 내세우는 건 이력서에서나 봤다고 했다. '맞아, 맞아'라는 동조의 목소리도 들리고 다 같이 웃었다.


활자에서 그림과 사진, 그리고 영상으로 이어져 온 매체의 변화는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을 바꾸게 했다. 책을 들던 손은 휴대폰을 들기 시작했고, 곧이어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의 집약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활자를 보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귀찮은 과정보다는 이미지를 보는 게 편해졌고, 더 나아가서는 손 안에서 영상이 자유롭게 재생되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다.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저냥 지내는 '껍데기 사람'이 많다. 책을 일체 읽지 않는 친구들에게 독서를 권유해봤다. 사람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돌아온 친구의 답은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생각은 많이 할 수 있다'였다. 유튜브를 보면서 유익한 정보와 즐거움을 얻는 것 자체가 생각이라고 하는 그를 보며 사람에 따라 가치관이 다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내 기준에는 책을 읽는 일은 참 유용하다. 여행에 관련한 책이면 내가 가지 못하는 곳에 대해서도 간접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고, 시집을 읽으면 이런 발상과 표현도 가능하구나를 깨달을 수 있다. 에세이를 읽으면 다른 이의 삶도 이해할 수 있는 경륜을 얻는다. 그리고 모든 독서의 최종 목적지는 '사유'이다. 사람이 다른 종들과 차이를 둘 수 있는 것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은데, 독서는 생각을 넘어 사유까지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계속해서 사유할 생각이다.


독서를 좋아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특이한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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