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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장을 담그듯, 뜸을 들이듯

책을 사놓고도 책장에 오래도록 꽂혀있으면, 나 스스로도 갑갑하고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렇게 방치해둘거면 굳이 책을 왜 샀나 싶기도 하고, 왠지모르게 짜증이 나 기분이 찝찝해진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일뿐, 지나고 나면 그 뿐일 감정이긴하다.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읽었다. "읽을 책을 사서 꽂는 것이지, 읽은 책을 꽂아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생각해보면 나의 독서습관도 그렇다. 책을 샀다고 해서 우르르 그 책들을 읽어서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장을 담그듯, 갓지은 밥에 뜸을 들이듯 서재 책꽂이에 한참을 꽂아두었다가 마침내 첫 페이지를 열어보곤 한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어느 한 켠에 꽂혀 있다고 해서 자기 자신이 게을러 진 것 같거나 한심하다고 느껴질 때엔, 언젠가는 내 손에 들리게 될 책들이 농익는 중이라 생각해본다면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독서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속도경쟁이 아니다. 다만, 스스로가 떳떳하기만 하면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친구가 될 것들이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이 된 것처럼, 책장에서 꺼내어져 마음의 양식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일뿐이다. 장 담그는 것을 두려워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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