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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봐, 해봤어?(feat. 수전교체)


"와씨..더럽게 좁네 이거"


지난 연휴에 있었던 이야기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이 토요일(27일)과 겹치며 다가오는 월요일(29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됐다. 조금 길게 쉬어볼까 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금요일(26일)에도 대체휴무를 사용했다(현재 내 직장은 주말에 근무를 하게 되면 대체휴무를 준다). 금요일에 일찍 일어나 책을 조금 읽고, 귀신같이 빨리 일어난 트롱이를 돌봤다(트롱이는 여섯시쯤 일어난다). 트롱이를 아침 9시에 어린이집에 보낸 후 쾌재를 불렀다. "자유다!"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김에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나섰다. 모두가 출근하고 나만 운동장으로 향하는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상쾌하고 좋았다. 한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한 뒤, 같이 간 아내와 늦은 아점(?)을 먹었다. 갑작스레 곤드레밥과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인근의 식당을 찾아갔다. 곤드레밥과 된장찌개까진 좋았는데 코다리찜이 같이 나왔다. 나는 코다리찜을 좋아하지 않는데, 상쾌한 하루에 뭔가 찝찝한 오점이 생긴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쉬어볼까 하다가보니 식탁 주변에 적치(?)해놓은 각종 잡동사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안그래도 바쁘단 핑계로 치우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이다 싶어 또 다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말끔하게 치웠다. 트롱이 방에 있는 가구도 재배치했다. 됐다. 이 정도가 딱 휴일 노동량에 맞다며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아내가 박스 하나를 내밀었다. 수전이었다.


악어모양으로 생긴 이 수전은 트롱이가 태어났을 때 처남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며 선물한 것이다. 뜨거운 물쪽으로 수전 손잡이 방향이 확 틀어지지 않게 고안된 것이다. 어린 아이가 뜨거운 물에 다치지 않도록 하는 수전이었다. 나는 한번도 수전을 교체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일단 막막했는데, 아점으로 나온 코다리찜과 집에와서 한 대청소에 이미 지친 나는(코다리찜은 그냥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망설였다. 내가 이걸 교체할 수 있나?


유튜브로 어떻게 하는지를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할만하네?라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유튜브에서 설명을 잘해줬다). 어렸을 때 '과학상자' 좀 만져본 사람으로서 공구박스에서 대충 장비 몇 개 집어 들고서 호기롭게 시작했다. 5분정도 지났을까. 내 입에선 자동으로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세면대 아래는 왜이렇게 좁게 만들어놓은거야? 와씨.. 더럽게 좁네 이거.


교체 시작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내 머릿속에는 '사람 부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자기계발서('세이노의 가르침'인듯 하다)에서 부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비용을 지불해가며 편의를 구입한다는 내용이 생각이 났다. 왜 갑자기 그게 떠오른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죽이되든 밥이되든 해보자로 마음이 굳어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아내가 한 말이 내 마음에 더 불을 지폈다. "동생 부를까?"


아니지,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남자의 자존심이 있지. 처남이 우리집 수전을 교체한다고? 그것도 내가 낑낑거리며 해결하지 못한 것을 굳이 불러서? 절대 안된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이를 악물고 좁아터진 세면대 밑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화장실 바닥과 나는 이미 한 몸이 됐고, 한숨과 탄식이 번갈아나오던 그 때, "됐다! 풀렸다!"


수전교체는 수전을 꽉 쥐고 있는 육각너트 푸는 게 일이다. 그것만 해결되면 나머진 별 것 아니었다. 세면대 위에 있는 악어를 아내에게 의기양양하게 보여주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내려 달라했다. 뜨겁게 올라간 내 어깨를 진정시키려면 그 정돈 필요했다. 확실한 것은 아내보란듯 수전교체를 해서 내 어깨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조금 대견했던 것이다. 사람을 안부르고 해결했다는 그런 조그마한 성취감 정도일까.


사실 집안 일 중 웬만한 것은 알아서 척척해낸다. 하지만 뭔가 수전이라든지 보일러, 에어컨 쪽의 일은 왜인지 모르게 전문적인 기사분들이 오셔서 처리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마전 아는 형 한 분은 여름맞이 에어컨 청소를 위해 사람을 불렀다고 했다. 그 가격은 무려 15만원이었다. 뜨악할 법한 가격이었지만, 그 형도 전문가가 와야된다 생각했는지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듯 했다. 우리집 에어컨도 청소를 해야할 것 같았는데 이건 또 언제하나, 돈은 얼마나 드나 싶었다. 사람불러야되나 싶기도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아내가 그냥 에어컨을 가동 중이었다. 에어컨 청소는? 하고 물었는데 대수롭지 않은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했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결해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까.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까지 모두 편리함이라는 핑곗거리를 대고 돈을 낭비했고, 해결하려는 공부는 하지 않았다.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해보지 않은 분야라고 해서 뒷짐지고 물러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봐야 한다. 사실상 웬만큼 전문적이지 않고서는 해결되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했던 말로 유명한 명언이 떠오른다.


"이봐, 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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