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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Jan 12. 2023

내 집은 어디인가

대한민국 30대 기혼 여성에게 집이란

당신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든 나의 집이 된다니.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을 천생연분에 대한 로망처럼 간직하던 시절이 있었다. 15년 전 대학생 시절이었다. 부모님이 얻어준 좋은 오피스텔에 살면서 진짜 주거지인 '집'이란 공간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던 시절이었다.


집. 나와 내 아이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30대 중반 여자에게 집이란 현실이었다.


2020년대 초반은 참 힘든 시간이었다. 2016년에 결혼하면서 별생각 없이 전세를 얻었고, 그 후로 남편의 지속적인 설득에도 대출이 무섭다는 이유로 내 집 마련을 미루었다. 2018년에 출산을 했고, 신생아를 안고 전셋집 욕실에 물이 잘 내려가지 않아 불편하게 사는 사이 대한민국 집값은 폭등했다. 그즈음부터 '집'이란 단어만 나오면 분노하는 남편과 2017년 초에 사려고 했던 아파트 실거래가가 2배 넘게 뛴 걸 보며 몇년 간을 잠 못 이뤘다. '벼락 거지', 그 시대 무주택자를 일컫는 단어는 우리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고, 벼락 거지에 편입되었다는 괴로움에 신혼 생활은 부부싸움으로 얼룩졌다. 목동에서 집 때문에 싸우던 부부가 다툼 끝에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그런 던 중 모자는 합심하여 덜컥 집을 계약하는 사고를 쳤고, 그 때 알코올중독 기미가 있었던 나는 우울증 약을 먹어야 될 정도로 다가오는 합가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안 그래도 저질체력에 이상주의자인 나는 워킹맘의 고된 삶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심정으로 살아냈다. 책임져야 할 아이가 없었다면 이겨내지 못했을 거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나도 남편 못지않게 주거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계속 집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서울이고, 강남이고 지긋지긋했다. 그놈의 강남집에 대한 열망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남편 때문에 강남이 더 싫었다. 그럼에도 자가 마련을 포기할 수 없었던 건 내 인생의 유일한 존재, 아이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의 벌이로 강남 살이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아이의 학령기만이라도 좋은 동네에서 보내고 싶은 욕심은 좀처럼 포기가 안 되었다.


나는 학창 시절의 일부를 강남 8 학군에서 보냈지만 별로 좋은 기억은 없었기에 출산 전에는 아이를 강남에서 키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가 태어나니 주거관과 교육관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오늘 어제의 생각이 바뀌는 일이 다반사였다. 내가 살아본 지역은 몇 안 되었고, 아이에게 가장 좋은 동네는 결국 강남이란 결론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15세에 이사와서 잘 적응하지 못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강남 중심에서 살아온 아이가 느끼는 바는 나와 다르리라.


그래서 또 한 아이의 엄마로서 오늘을 이렇게 살아간다. 오늘의 내 벌이와 미래의 벌이를 가늠하며, 나는 어느 정도 아이에게 제공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아이가 없었으면 이 정도로 주거지를 고민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간절하기까지 했을까. 적당히 넷플릭스 보며, 한가한 회사 생활에 만족하며 인생을 보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나의 아이가 없는 인생은 상상 불가이다. 오늘도 너를 위해 더 나은 미래, 더 좋은 집을 위해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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