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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Feb 03. 2023

애증의 영어

영어유치원 갈래? 말래?

단물 우려먹는 왕년의 성공담 중의 하나가 수능 영어 성적이다.


상위 3%


자부심은 내가 처음 영어를 배운 게 중학생 때였으나 상위 3%의 성적을 냈다는 이유로 더 견고하다.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사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었고, 공부에 동기부여나 의지도 딱히 없었다. 반장을 하기도 했지만 왜 반장이 됐었는지는 모르겠다. 주목받는 걸 싫어하는 난 학창 시절 내내 그림자 같은 학생으로 지내는 게 목표였다.


지금도 강렬한 기억 중의 하나는 중학교 진학 후 첫 영어 수업 시간이다. 교사는 한 줄씩 돌아가면서 읽으라고 했고, 영어라곤 알파벳 정도밖에 몰랐던 나는 내 순서가 오는 긴장감에 진땀 흘렸다. 망신의 기억은 없는 거 보니 나는 뒷번호였던 터라 중간쯤에서 중단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한달음에 영어학원에 가겠다고 했고, 지금도 잘 나가는 대치동 영어학원에서 매일 2시간씩 공부했다. 그곳은 하루에 정해진 양의 영단어를 암기하지 않으면 귀가시키지 않는 곳이었고, 허울은 모범생이었던 나는 거의 항상 일 번으로 귀가했다. 단지 창피해질까 봐서였다. 시험기간에는 시험 범위의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고, 그런 방식으로도 영어 성적이 괜찮게 나오기는 어렵지 않았다. 20년 전이니 가능했겠다 싶다.


그 이후로 영어공부를 어떻게 했는진 잘 기억나지 않지만 고3 전까진 매일 영어학원에 갔고, 나는 수업과 주어진 숙제에 성실한 학생이었다. 일명 수포자였지만, 암기에 능했던 나는 그 시대 영어과목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고, 운과 더불어 수능 1등급의 결과를 얻어냈다. 흐린 기억으로는 아마 2개쯤 틀렸던가.


이제 나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이의 학령기를 앞두고 있는 예비 학부모이다.


영어유치원 보낼까 말까?


나는 돼지엄마가 될 자신도 없고, 본인과 배우자의 학업 성과를 봤을 때 아들이 크게 공부 재능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공부와는 별개로 아이가 영어만은 잘했으면 하는 욕망이 자꾸 올라온다. 우연히 외국계 회사에 취직한 나는 십 년 넘게 매일 영어로 소통하지만 여전히 듣기와 말하기에 두려움이 있다. 유학 준비도 했었고, 쉽게 높은 어학 점수도 받았고, 지금도 영어를 좋아하지만 늘 내 영어 실력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특히 생활 영어는 젬병이다. 유학은 결국 안 갔지만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기회를 넓히려면 영어는 필수라는 믿음이 있다.


고로 순전히 내 욕심 때문에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다. 주거지 주위에 일반유치원은 거의 없지만 영어유치원은 넘쳤고,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결과적으로는 알파벳도 모르는 아이의 강력한 거부로 무산됐다. 아직 어린데 내 욕심으로 강요해서 벌써부터 학습으로 고통받게 하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가 준비가 안 돼있다고 느꼈다.


그러고 나서 두 달쯤 지났을 뿐인데 또 나는 아이의 방과 후 영어학원을 찾아보고 있다. 그 사이 내년에는 다시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푼 희망을 안고? 정말 애증의 영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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