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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Feb 10. 2023

사랑하지만 혼자 있고 싶다

내가 힘든 건 나 때문일까, 너 때문일까

가장 확신 있게 사랑하는 존재, 나의 아이. 아들이라 더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아들이라 더 힘든 건 아닐까 싶은 내 사랑. 믿거나 말거나 아들 엄마는 평균 4년 수명이 짧다는 말도 있다. 5년이 채 안 되는 짧다면 짧은 시간의 현재진행형 육아기간 항상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내가 이토록 힘든 건 내가 포용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네가 유난한 걸까.


하등 쓸모없는 궁금증이라는 건 알지만 힘들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다른 남자아이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그래도 위안이 될 것 같은데 불행하게도 주위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절대적으로 표본이 부족하다.


아들은 단순해서 키우기 더 낫다는 말도 있지만 왈가닥 여자아이도 있듯이 나의 아들은 단순하지도 않다.

아들은 딱 하나, 눈치 보는 것만 빼고 모든 면이 나와 다르다. 아들이 말문이 열린 후 나와의 차이는 극명하게 다가왔다.


내성적인 나는 아들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하고, 말 거는 것조차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들은 극강의 붙임성과 퍼주기 좋아하는 오지랖을 자랑한다. 행여 타인과 눈이 마주칠까 허공만 보며 빠르게 걷는 나와 달리 아들은 느리게 걸으며 ‘안녕하세요?’, ‘어디 가세요?’ 등등 만나는 사람마다 말을 걸었다. 그런 사소하지만 나에겐 사소하지 않은 문제부터 1초도 가만있지 않는 입과 몸, 시도 때도 없이 우다다다 공룡처럼 달려드는 아들로 인한 신체적 고통까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단연코 제일 힘든 건, 그만하라고 백 번 말해도 멈추지 않는 순간이다. 다수의 아들 육아서를 독파하고 남자는 시각 동물이라고 하니 내 눈을 바라봐, 그만해 를 외쳐 보지만 도통 먹히질 않는다.


도대체 아들 둘셋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


특히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거나 떠드는 행동은 시선도 시선이지만 공중도덕에 예민한 나와 남편에게 너무 큰 고통이었다. 외식이라도 하려면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앉아, 조용히 해.’를 무한 반복해야 했다. 긴장과 피로로 음식 맛 따윈 전혀 느낄 수 없었고, 여전히 외출 한 번 하려면 소심한 나는 대단한 각오를 동반해야 한다. 원래도 집순이었지만 아이가 생긴 후부터는 더더욱 외출을 꺼리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최소한의 혼자 있는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 나는 폭발한다는 것. 그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언제나 많아서 몰랐다. 난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계속 쌓이는 유형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기약 없는 자격증 공부는 2년째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일주일에 최소 두세 번의 회식도 함께 진행 중이다. 뭐, 사실 혼자 하는 육아는 이미 일상이다. 방울이 같은 아들은 당연히 나와 세트.


아들이 26개월쯤 말문이 열린 이후 과도한 스트레스를 순간적으로 받으면 머리가 절절 끓으며 정신이 회오리치는 느낌이다. 인생에 분명 스트레스받는 때는 많았는데, 대부분 긴장감에 손 끝이 차가워지고 심장이 두근댔다. 반면 아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시뻘겋게 끓는 불길 같았다.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랄까. 통제 불가능한 아이를 보는 무력감은 생각보다 컸다.


너는 어떻게 해야 말을 듣는 거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 외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문제는 없었다. 이성적인 자신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나는 완전히 무너졌고, 아무 때나 울고 화내기 시작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상황을 바꿀 수도 없으니 자신만 망가뜨렸다. 한창 항우울제 먹을 때는 약을 먹자마자 아이를 두고 기절한 것처럼 잠들었다. 처음엔 어린아이를 두고 잠든다는 게 충격이었지만 아이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힘들면 항우울제를 털어 넣었고, 아무 데나 쓰러졌다. 그 시절엔 심지어 이래서 프로포폴 중독이 되는구나 공감했다. 기절하듯 자고 나면 그래도 좀 나았다. 수면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니까.


결혼 안 한 사람은 평생 애라는 말도 있다. 결혼과 육아는 인생 최대의 고비이자 인생을 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꾸는 건 맞다. 온실 속 화초 같던 내가 그래도 좀 어른이 된 거 같다. 모성애 신화에는 부응하지 못한 모자란 엄마지만 그래도 엄마의 역할에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사랑스러운 아이는 여전히 좀 얌전해진다 싶으면 곧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안 듣고, 좀 나아졌다 싶으면 돌발 행동을 한다.


15년 남았다, 아들아. 항우울제가 아니라 뭘 먹게 되더라도 성인 될 때까진 엄마가 사랑으로 책임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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