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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린 Feb 13. 2023

직장인의 굴레

월급의 딜레마

돈벌이를 시작하기 전에도 나의 돈벌이는 막연히 직장인일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직장인이라 다른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대학생이 돼서는 광화문이나 강남역에 사원증을 걸고 다니는 세련된 정장 차림의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현실의 디테일은 좀 다르지만 어쨌든 정규직 공채로 입사 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내 이름이 박힌 명함, 내 이름이 뜨는 사무실 전화기를 대면한 날은 참으로 뿌듯했다. 취준생으로서 졸업 후 공백기를 초조하게 보낸 참이었기에 어디라도 감사한 지경이긴 했다.


부서장은 미국인이었고, 부장은 전형적인 한국 꼰대였지만 모든 게 새로웠고, 재미있었고, 나는 열정으로 충만해 있었다. 한겨울에 하이힐을 신고 눈 쌓인 공장을 이리저리 걸어 다녀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런 반짝이는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은 얼마나 빨리 찾아오는지..


머지않아 어딘가에 갇힌 기분이었다.


나는 자유로운 창작과 표현, 아이디어를 사랑하는 디자인전공 출신이었고, 회사에서의 내 업무는 디자인이 아니었다. 너무도 쉽게 디자인 직무를 포기했지만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공무원에 적합하다는 ISTJ라서 그런지 일머리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회사 생활했지만 항상 뭔가 공허한 마음이었다. 더구나 긴 근무 기간이 누적되면서 이제 디자인 직무와는 너무 멀어져 다시 그 일을 하긴 힘들게 됐다.


직장인이 적성이 안 맞는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단연코 먹고사는 문제 아닐까.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은 돈을 못 벌까 봐 두려운 마음을 커지게 만들었고, 그곳에 나를 단단히 옭아맸다. 난 대부분 확신이 부족해 결정을 잘 못 내리는 사람이었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잘도 흘러 12년을 넘겼다.


올해가 되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학창 시절 12년만큼의 시간 동안 억지로 지루한 돈벌이를 했으면 이제 다른 일을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대학교까지 고등 교육을 받았으면 일을 해서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직장인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보면 어떨까. 한 명의 사람을 대학 교육까지 시키는데 평균 4억이 훌쩍 넘는다는 뉴스를 봤었다. 나는 현재 직장에서 대충 가늠 잡아 6억 넘게 벌었다. 나 하나 길러지는 데 소비된 돈만큼은 벌었으니 이제 재밌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이러다 내가 오늘 사고로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동시에 미취학인 자식이 있는 기혼자인 내가 돈 나오는 파이프라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정적인 직장을 걷어차고 정글의 세계로 자진해서 들어가겠다니, 다시는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하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하다. 외벌이로 내가 수입이 없는 기간을 버틸 수 있을까, 아이 장난감 하나 제대로 사줄 수 없게 되면 어떡하나. 무작정 그만뒀다가 집에 계속 있는 애엄마가 되면 어떡하나.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먹고사는 일, 그 부분에서 계속 발목 잡힌다(주부라는 직업은 위대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나는 대체로 집안일에 재능이 없고, 지금도 거의 내 몫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수준이다).


3월에 학원 등록을 한다. 그전에도 다른 업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찾았을까. 회사일에 육아에 집안일까지 하던 일도 하면서 해야 한다. 그래도 이번엔 정말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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