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린 Mar 14. 2023

선(善)의 선순환

나의 덕이 나의 아이에게 돌아왔으면

나는 에코세대의 끝자락답게 꽤나 자기 위주이다. 부모 세대만 해도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 다 같이 잘 살자 라는 사고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나에겐 전혀 없다. 마음 만은 저는 술 안 마시는데요? 를 외치는 최근 입사한  MZ세대 막내에 가깝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표현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로 과민성 대장염을 몇 년을 달고 살았지만 그런 만큼 자기표현이 확실한 신입이 거슬리는 꼰대 마인드도 탑재하고 있다.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지만, 타인이 선 넘는 것도 못 견디게 싫어한다. 각자도생이라는 현대 한국 사회에 걸맞은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몇 년 전 신용 대출 상환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내가 추가 이자를 지불하게 되었는데도 얼마 안 된다며 미안해하지 않는 은행 직원과 대화 후 나는 조용히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젊은 직원은 죄송하다며 백배 사죄하며, 민원 취소를 부탁하는 연락을 해왔다. 다른 사람이 본인의 잘못을 잘 모르면, 소리 질러 싸우기보단 다른 방법을 선호한다. 내가 너무 했나 싶었지만 지나가다 보니, 웃으면서 은행 잘 다니고 있었다(?). 나에게도 관대하지 않은 만큼 남에게도 결코 관대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어느 시점으로 좀 변했다. 원래 무교에 가까웠던 나는 지옥과 천국 따위를 믿지 않았고, 제사나 윤회 등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천벌을 받는다? 못된 인간들이 더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웬만하면 착하게 살자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다. 아이가 밝고, 착하게 자라는 건 부모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구나, 주위 어른들과 그 어른들이 키우는 아이들에 의해 나의 아이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개인적인 사회라 할지라도, 개인적이다 못해 이기적인 부모들만 있으면, 서로의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줄 뿐이었다. 우리 아이가 주려고 가져간 과자를 본인 아이에게 먹이기 싫은지 매서운 얼굴로 가로채는 다른 엄마를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비슷한 마트 과자가 옆에 쌓여 있었으니 다른 이유로 우리 아이나 내가 싫었던 걸 수도 있지만 이유는 나도 모른다.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은 나도 백배 이해하지만 짜증이 가득한 표정과 말투로 나의 아이를 대하는 다른 엄마는 내가 통제 가능한 육아 환경이 아니었다.


워킹맘인 데다 내성적인 나는 5년을 살았어도 동네에 아는 사람 한 명 없었고,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아이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었다. 외동인 아이에게 동생도, 친구도 만들어 줄 능력이 없었다. 언니, 언니 하며 같은 반 아이 엄마와 친하게 사람을 보며 때때로 부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그렇게 할 자신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와 같은 반 친구들의 얼굴과 이름을 일부러 외웠고, 놀이터에 가면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아이들을 살펴본다. 어느 날은 다행히 아이와 같은 반 아이가 차도로 굴러가는 공을 잡으려고 뛰어가는 걸 저지할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엄마의 아이였지만(수다 떨던 아이 엄마는 인사 한 마디 없었다), 아이가 위험해지는 걸 막을 수 있다는 데 안도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면, 나의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른 누군가도 나처럼 나의 아이를 봐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요즘 나는 예전의 엄마처럼 경비아저씨들에게 가끔 먹을 걸 드린다. 아이가 생기기 전엔 단 한 번도 없던 일이다. 간식을 받으면서 나와 아이를 한 번이라도 보고, 기억해 주지 않을까. 우리 아이를 예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물론 우렁차게 인사하는 아이를 귀여워해 주시는 아저씨는 특별히 더 챙긴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쿠키인데, 비싼 건데.. 하는 마음이 솟을 때도 있지만 어차피 내 입에 들어가 없어질 것, 한 번쯤은 우리 집을 지켜주는 분이 맛있게 드시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다르게 생각해 본다.


뭐 대단한 건 없다. 애초에 그 정도로(?) 착하게 태어나지는 않아서 소소한 것들이다. 나의 아이를 이 사회가 따뜻하게 바라봐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친절해지려고 노력해 본다. 나의 이런 작은 노력이 다른 사람에게도 조그마한 전파력이 있기를 바라본다. 이미 각박해진 사회일지라도 아이들이 주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카페 알바 한 번 해보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