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을 떠나 소시민을 꿈꾼다
나는 알바 경험이 별로 없다. 3개월 이상 했던 아르바이트는 대학생 시절 패밀리 레스토랑과 호주에서의 푸드 코드 테이크아웃 전문점 둘 뿐이다. 스무 살, 첫 알바였던 버거킹에서는 말이 없고, 재미있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3주 만에 해고된 적도 있다. 부모님은 알바보단 장학금에 집중하라고 알바를 말리셨다. 지금 돌아보면 좀 아쉬운, 소박한 역사다.
회사 생활은 12년 넘게 했지만 나는 아직 카페 아르바이트생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왠지는 모르겠다. 커피를 좋아하긴 하지만 전문적으로 배울 만큼은 아니고, 모르는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한다. 회사를 관두고 카페나 차려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면 굳이 카페를 직접 열어 운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진 않다. 싫은 소리를 못하는 내게 사람을 고용하는 건 무섭다.
요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욕심 없이 사는 삶, 소시민을 꿈꾸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요즘 치열하게 사는 삶에 지쳤나 싶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닌데 무리하게 뒤처질 수 없다는 초조함과 욕심으로 무장해 계속 달려온 것 같다. 남이 보기엔 별로 열심히 산 거 같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름 부단한 노력으로 꾸려온 인생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미국 작가의 책이었는데 혼자 있을 때 행복하고 충만한 아이를 존중해 주고, 작가 등 혼자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으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사회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런 삶도 있고, 존중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든 사람들과 어울려 조직 속에서 살아야 된다고 스스로를 가둔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과 함께할 때 에너지 소모가 큰 사람에게는 다른 길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의 현재 꿈은 매일 산책을 할 수 있는 자연 속 주택에서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며 여유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아이 교육에 대한 욕심만은 버리지 못해 최소 15년 후에나 가능한 삶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래도 미래의 뭔가를 꿈꾼다는 게 나에겐 의미가 있다. 아이 스무 살에 독립시키는 게 목표라 그 때면 아이가 곁에 없을 테니 이루어져도 미완성의 꿈이다. 뭐.. 그래도 일단 아이가 공부 길이 아니면 미련 없이 떠날 예정이다.
계획대로 내년 초에 퇴사 및 이사를 하면 아이 등원 후 커피가 맛있는 동네 카페에서 하루 세네 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꿈을 꿔본다. 얼핏 당근 알바를 보니 37세인 나를 써줄지 모르겠지만.. 흑흑. 내년에 점심 알바 필요하신 대치동 주변 카페 사장님들 연락 좀 주세요. 12년 개근에 책임감과 성실만큼은 자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