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rror Range)
그녀가 LY의 제안을 수락한 건, 그리움이나 호기심 같은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데이터의 오류'를 수정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 일상에 난입한 이 낯선 변수(LY)가 사기꾼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과거의 채권자인지 확인해야 했다.
약속 장소는 회사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 겨울바람이 매서웠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처럼 따뜻한 라떼를 주문했다.
"여전하네."
맞은편에 앉은 LY가 쓴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 거품에 머물러 있었다.
"우유 좋아하는 거. 어릴 때도 그랬잖아. 새우깡도 꼭 우유랑 먹고, 밥 대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 먹겠다고 고집 피우고."
그녀는 미간을 좁히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관찰했다. 내 식성을 알고 있다. 이건 뒷조사로 알 수 있는 정보다. 그녀는 동요하지 않고 사무적으로 물었다.
"제 뒷조사를 하셨나요?" "아니, 기억을 하는 거야."
LY는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가 다녔던 종합학원 기억나? S종합학원 4층. 너는 중등부, 나는 고등부였지. 쉬는 시간마다 네가 수학 문제집 들고 내 교실로 찾아왔었어. 이거 모르겠다고, 가르쳐 달라고."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학원 건물은 기억납니다. 4층이었던 것도요. 하지만..."
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차갑게 분석했다. 내 성격은 지극히 내성적이다. 타인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스트레스인 내가, 상급생 교실에 제 발로 찾아가서 질문을 한다고? 그것도 수학을?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네요. 저는 그런 적극적인 성격이 아닙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해설지를 보지, 사람을 찾아가진 않아요." "그때의 너는 달랐으니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당신이 기억하는 그 '활발한 소녀'는 제가 아닙니다. 저를 다른 사람과 착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빤히 응시했다
"저에게서 금전적인 이득이나, 다른 무언가를 원해서 없는 과거를 지어내시는 거라면 시간 낭비입니다
그녀의 건조한 독설에 LY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처받은 얼굴. 하지만 그녀는 그 표정을 '슬픔'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그저 '상대방의 의도가 간파당했을 때 나오는 당혹감' 정도로 분류했다.
"내가 너한테 뭘 바란다고 생각하는구나." "기억에 없는 타인이 접근하는 이유는 통계적으로 둘 중 하나니까요. 호의를 가장한 사기, 혹은 원한."
LY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그저 식어가는 아메리카노 잔을 만지작거리며 억울함과 답답함을 삼키는 듯했다.
그때였다. 그녀의 시선이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에서 다시 LY의 얼굴로 돌아왔을 때, 뇌의 아주 깊은 곳에서 미세한 스파크가 튀었다.
지금 눈앞의 남자는 30대 중반의 어른이다. 하지만 겹쳐 보였다. 아주 먼 옛날, 자신이 꼬마였던 시절. 유독 피부가 뽀얗고, 옷차림이 단정해서 동네 아이들과 섞이지 못했던.. 부잣집 도련님 같았던 하얀 얼굴의 남자아이.
'오빠...'
입 밖으로 낼 뻔한 단어를 그녀는 황급히 삼켰다. 기억의 파편은 0.1초 만에 사라졌다. 그 '하얀 도련님'이 이 남자라고?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다. 그리고 그 도련님과의 기억 속에 '사랑'따위는 없었다. 그저 흐릿한 이미지뿐.
"증거를 대세요."
그녀는 다시 차가운 가면을 썼다.
"말뿐인 추억팔이 말고, 우리가 정말 그런 사이였다는 객관적인 증거요. 사진이든, 편지든. 그게 없다면 오늘 만남은 이걸로 끝내죠."
LY가 코트 안주머니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