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오래 세상을 살아갈 사람에게

우리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여름에서 겨울까지.그리고 다가올 봄)

by 자기계발중독자

당신이 겪지 않아도 될 폭풍우를 만나게 해서 미안해


사랑하는 그대여.


요즘 나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힘이 듭니다. 그 맑고 깊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너무도 불안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쌓아 올렸던 성벽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해야 할 당신의 우주가, 나의 선택과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굉음을 내며 갈라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 균열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 소란스러운 진동이 당신의 작은 어깨에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집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요. 아직 9년밖에 세상을 겪지 못한 당신이, 어른들도 감당하기 버거운 이 폭풍우 앞에서 얼마나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지 나는 봅니다. 당신은 놀라고 무서울 텐데도, 오히려 떨고 있는 나를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더군요.


나의 사랑, 나의 작은 사람아.


사랑해서 당신을 초대했습니다. 이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당신을 나의 생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풍경이 꽃밭이 아니라, 진흙탕 싸움의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나를 사무치게 부끄럽게 합니다.


외로움은 나눠 갖는 것이라 배웠지만, 이 깊은 고독과 슬픔을 오롯이 당신 혼자 감당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형제도 자매도 없이, 그저 조그만 등 하나로 이 흔들리는 집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당신.

언제 이 긴 터널이 끝날지 나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약속합니다. 나의 세계가 반으로 쪼개져 무너진다 해도, 내가 서 있는 마지막 한 조각의 땅은 오직 당신을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그 위에서만큼은 당신이 다시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도록, 나는 끝까지 버틸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어른들의 소란스러움 때문에 당신의 빛을 잃지 말아 주기를. 당신은 그저 자라나는 것에만 집중하기를. 나머지 비바람은 내가 온몸으로 막아설 테니.


눈물을 닦으며 하는 약속


하지만 그대여. 축축한 눈물로 적어 내려가는 나의 고백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당신을 향한 죄책감으로 나를 갉아먹는 일은 이 편지를 끝으로 멈추려 합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잠시 흔들렸을지언정, 그 속에도 분명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음을 나는 압니다. 그러니 내일부터 쓰일 나의 기록에는 우리가 함께 터뜨렸던 웃음과, 당신이 내게 선물해 준 햇살 같은 기쁨만을 담겠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나는 상상할 것입니다. 당신이 내 곁에 앉아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우리가 함께했던 그 행복한 시절 속에 우리가 여전히 머물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더 이상 울지 않고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 테니까요.

먼 훗날, 당신이 자라나 엄마가 남긴 이 기록들을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흔들리는 약한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 꽤 단단하고 근사한 이름을 가진 작가가 되어 당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때 나는 당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그 겨울을 참 잘 건너왔다고. 당신 덕분에 엄마가 이렇게 멋지게 일어섰다고.

그러니 나의 사랑아. 우리, 조금만 더 버텨봅시다. 지금의 이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더 단단해진 땅 위에서 우리는 다시 마음껏 웃게 될 테니까요.

당신의 내일을 위해, 나는 오늘 나의 슬픔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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