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짝사랑(10)
햄릿형 인간이 무엇 하나 내세울만한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패배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끊임 없는 사색과 사유는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고, 가능한 이유보다는 불가능한 이유를 찾는다. 결국에는 실패를 두려워 하며 주변 모든 것에서 원인을 찾은 뒤 의미 없는 후퇴를 반복한다. 이런 사람들이 무심코 간과하는 한 가지는,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득이 전혀 없는 경우, 혹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경우에도 행동을 미루며 어리석은 자기합리화에 빠져 버린다는 점이다. 과거의 나는 그런 인간의 표상이었던 데다가, 나를 덮쳐 온 현실적인 문제들이 족쇄가 되어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 버렸다.
그녀가 향기만 남기고 떠나간 그 방에서 나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한 달 정도 지난을 때는 신체에도 문제가 생겼다. 1년 전부터 있었던 다리 통증이 심해져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허리디스크가 매우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내게 수술을 권했다. 처음에는 수술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를 해보려 했으나 증상이 점차 심해져 결국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날짜를 잡고 기다리던 동안 상태는 더욱 심각해져 제대로 걷지 못했던 것은 물론, 발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수술을 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호흡곤란과 발작으로 마치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꼈다. 사흘 내내 한 자세로 누워서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수술 부위의 극심한 고통을 견뎠다. 그러다 그냥 숨이 멈추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셀 수 조차 없다. 다만 죽기 전에 그녀를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그동안 계속 사랑해 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말 한 마디 조차 하지 못하고 죽기는 너무 억울했다.
그녀를 향한 집착 때문이었는지, 그저 가벼운 후유증에 불과했던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고통의 시간은 지나고 증세는 점차 나아졌다. 소변줄을 제거하고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쯤에는 휴대전화를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다. 그녀에게 수 차례 연락이 와 있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고, 평소와 같이 주기적으로 보내 오던 연락이었다. 난 죽다 살아났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그녀가 그 언제보다 보고싶었다. 상황을 전하자 그녀는 바로 병문안을 왔다. 제대로 거동을 하지 못해 수염과 떡진 머리카락으로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내 모습 따위는 상관 없었다. 내가 그녀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예쁘고 맛있는 케이크를 사 왔고, 난 아프지 않은 척 하며 겨우 휴게실까지 이동해 함께 케이크를 먹었다. 걱정스러워 하는 그녀의 살짝 처진 순한 눈빛이 고통에 지친 내 마음을 녹였다. 사경을 헤매일 때 했던 생각들이 아른거렸으나 막상 그녀를 마주하자 그녀와 나 사이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에 초췌한 내 모습이 비추어 보였고, 난 또 다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퇴원 후에는 한 달 정도의 요양이 필요했다. 하루종일 누워만 있어야 했는데,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거라곤 문자메시지와 전자사전에 들어 있던 전자책 몇 권을 읽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수술을 하고 나면 금방 나을 줄 알았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항상 수술 부위에 통증이 있었던 건 물론이고,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다시 누울 때, 기어가는 수준으로 걸을 때는 몇 배의 고통을 느꼈다. 수술을 했는데 왜 낫지를 않는 건지, 이대로 계속 누워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평생 남을 엄청난 장애가 생긴 것은 아닌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스스로를 좀먹었고, 급기야 내가 누워있던 방 창문을 바라보며 ‘저기로 뛰어 내리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렇게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을 생각했지만 당장은 창틀까지 기어 올라갈 수도 없었기에 그저 밤낮으로 색이 변하는 창밖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그런 나를 구원한 것은 이번에도 역시 그녀였다. 병문안을 다녀간 이후 걱정이 되었는지 거의 매일 같이 연락해 안부를 물었고, 나중에는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로 내 무료함을 달래 주었다. 그러면서 난 이전보다 그녀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더 가까워졌다. 그녀 덕분에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고, 죽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내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그녀의 연락만 기다리는 동안, 그녀에겐 그녀만의 일상이 있었다. 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와 그녀는 가끔 연락을 주고 받는 친구 그 이상의 관계로는 발전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와 내 삶은 너무도 달랐다. 그녀는 친구가 많았고, 동아리나 각종 모임을 통해 활기찬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밝고 명랑하며 긍정적이고 해맑은 성격을 그녀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일상 생활에 발산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나와는 정반대로 느껴졌다. 내게 대학은 그저 졸업장을 받기 위한 4년의 지겨운 과정에 불과했으며, 그 어떤 생활도 즐겁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안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혼자서 모든 것에 등을 진 채 침잠할 뿐이었다. 수술 이후에는 상황이 더 악화됐다. 불화 가득하던 가정은 결국 파탄이 났고 준비하고 있던 장교 임관이라는 미래도 산산조각이 났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 몰골은 점점 더 흉해져 갔다. 당장 내 앞에 그녀가 나타나도 몸을 일으키고 벽을 짚은 채 어기적 거리며 걸어가야 겨우 닿을 수 있었다. 그런 내가 그녀에게 마음을 품는 것이 너무도 주제 넘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나는 삶의 색깔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수채화와 유화처럼 결코 섞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저 고등학교 시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리고 그녀의 따뜻한 관심과 착한 마음씨 덕분에 그나마 조금씩 그녀의 빛을 받을 수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재활 기간 동안 그녀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이런 생각을 그 어느 때보다 확실하게 마음에 새겼고,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그녀를 잊기로 다짐했다. 패배주의의 늪에 빠져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 것이다. 이후 나는 그녀의 연락에 잘 응답하지 않았고,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