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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의 Nov 02. 2017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제6회 한터 온라인 백일장 작문부문 우수작


나는 오늘로 숫자가 되려 한다. 자살자 통계 5만 8천명을 이루는 하나의 수. 하나의 수가 되어 통계에 남아 국가의 행정 기록 문서에, 젊은 기자의 손끝에서 단어가, 문장이 되어 흘러 다닐 것이다. 몇 년을 그렇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고 나를 접하는 누군가의 눈가에, 혀끝에 맴도는 애도로서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학자의, 언론의, 누군가의 주장의 근거로 쓰일 것이다. 기록이 된 나의 삶이 보여줄 것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기록이 되는 것은 이처럼 의미 있는 일이다. 적어도 현재 나의 삶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의 삶은 어느 지점에서 그쳐야 하는가를 고민한지 수년이 넘었다. 그리고 마침내 몇 년 간의 방황 끝에 삶이 그쳐야할 지점을 찾아냈다. 지금 이 순간이 종착점이다. 내가 불구의 몸이 되기 전, 나는 기업의 하청인으로 에어컨 수리 기사 일을 다녔다. 젊은 안주인이 내온 미숫가루를 슬쩍 보온병에 담았을 때였다. 문가에서 나를 보는 그녀의 눈초리를 느꼈을 때. 그렇지만 비어 있는 집안의 쌀통이 떠올라 그 보온병을 움켜쥘 수밖에 없던 그날에. 부끄러웠으나 나는 그 미숫가루를 마시고 그 다음 날도 살아남았다. 그때가 삶의 한계선은 아니었다.


줄어든 생활 수급비가 절망스러워 어린 동사무소 직원에게 무의미하게 사정을 하던 때도 있었다. 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습니다. 선생님,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도와주십시오. 인간의 존엄에 대한 의식을 버리면 사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은 대학시절 노교수의 철학 수업에 이론으로만 존재했다. 밥과 웃음을 내 손으로 긁고, 빌어 모으는 삶에 절대 양도 불가능한 존엄이라는 것은 없었다. 9급 공무원 앞에 가진 것 없음을 수 없이 증명하고, 벗겨내는 대로 가만히 서서 알몸을 내보이고 돈을 받는다. 빌어서 받은 돈으로는 밥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존엄을 살 수는 없었다.


산란계에게는 모이를 많이 주지 않는다. 물과 모이가 많이 주어지면 알을 낳지 않기 때문이다. 산란계는 알을 낳고 최저 수준의 모이와 물을 제공 받아 삶을 유지한다. 내가 일할 힘이 있기에 주어지는 것은 최저 생계비였다. 일을 가기 위해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차비와 때 묻은 몸을 씻을 수도세. 어두운 방을 밝힐 전등 비용 따위의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키워지는 가축도 제공 받는 것이다.


나는 보다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몸의 한계를 시험하는 노동과 생존을 맞바꾸어야만 했다. 그러나 부서진 난간과 함께 떨어진 후의 나는 그 수단마저도 잃고 말았다. 일터에서 일을 잃고, 생존 수단을 잃었다. 남은 것은 동정으로 키워지는 삶이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삶을 그치고자 하는 선택은 증명하기 위해 선을 긋는 일이다. 키워지는 가축과 인간 사이에 선을 긋기 위해 단 한번, 나의 손목을 그어내는 것이다.


내 딸아이의 목을 스스로 졸라 증거를 남긴다. 우리가 이 삶을 거부하는 것임을.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한다. 모든 삶은 어딘가에서는 그치게 되어 있다. 그 지점이 나와 이 아이에게는 이 곳이다. 그녀가 나와 다른 삶을, 더 나은 삶을 살아가리라는 기대는 할 수가 없다. 세상의 평균과 다르게 태어나 아비 없는 삶을 살아갈 너는 어쩌면 나보다 더 그늘진 삶을 살 것이다. 세상은 너를 위한 자리를 쉬이 내어주지 않을 것이고, 너는 다른 이들의 반쪽도 안 되는 자리를 잡기 위해 절망 속에 몸부림을 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여기서 그치자. 존엄한 인간으로 설 수 없는, 동정 위를 걸어야 하는 삶을 내던져 증명해보이자.


주린 배는 몇 푼으로 채울 수 있으나 먹어도 허기가 진다. 동정도, 멸시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는 삶. 끊임없이 그 삶이 고프다. 인간의 존엄을 내 남은 삶으로 사겠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그 존엄한 자유를.

 

신음과 목소리가 사라지고 흐려지는 숨소리만 남은 방안에는 점점 멀어지는 TV 소리만 들렸다.


‘야당은 퍼주기식 복지는 불가하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서울시 교육청이 강서구 옛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설립을 추진하던 장애인 특수학교가 난항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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