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연필

아날로그는 착(着)이다

by 서지현
키가 줄어든 연필이 미덥다



아이들을 학교로 떠나보내고 주인을 대신해 책상 앞을 꿰차고 앉는다. 문구함에 꽂힌 연필들의 동정을 살펴보고 싶어서다. 연필들이 그새 얼마나 닳았는지, 심이 부러진 연필은 없는지 다정한 눈길을 보낸다.



대개가 고전적 형태인 육각연필들이다. 키가 헌칠한 연필과 작달막한 것들. 적당히 심이 닳아 뭉툭해진 연필도 있다. 어떤 연유로든 키가 줄어든 연필들이 미덥다. 짧아진 연필의 길이만큼 아이가 자라났을 것만 같아서다.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쥐고 종이 위에 무엇이든 쓰고 그리는 동안 그 마음이 자라고, 생각의 주머니도 넓어졌을 것만 같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러한 흐뭇한 기분을 꼭 같이 느낄 때가 있다. 아이의 작아진 옷들을 정리할 때다. 댕강 짧아진 손목과 바짓가랑이, 좁아진 몸통 둘레에서 기척도 없이 자라난 아이를 본다. 더는 입힐 수 없는 옷들을 착착 접어 개키며, 어제보다 자라난 아이를 품에서 한 뼘 놓아준다. 더러 서운하고, 더러 뿌듯한, 묘한 감정이 뒤엉킨 채로.



그런데 둥근 몸통을 가진 것들은 대개가 심이 뽑힌 채로다. 일부러 원통형연필을 사는 일은 없고, 아이들이 학교 앞에서 학습지나 학원 브로슈어의 미끼용으로 왕왕 받아온다. 문제는 멀쩡해 뵈는 것들이 툭하면 매끄러운 책상 위를 구르다 떨어져 심이 부러지고 만다는 것. 선심 쓰듯 아이들 손에 들려준 것들의 이 확실한 무용함이라니. 일부 어른의 장사치 같은 얕은 수에 살짝 화가 난다.



연필에 대해 깊은 애정을 품는 것은 어쩌면 꿈에 대한 마음이 유별난 까닭인지 모르겠다. 연필은 꿈을 그리는 도구다. 하얀 도화지와 빈 노트 앞에서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쥔 아이는 무엇이든 꿈꿀 수 있고, 또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연필은 꿈의 연료이기도 하다. 아무리 태워도 무해하고, 불순물을 남기지 않는 착한 연료. 이 꿈의 연료는 많은 실수를 용납하는 동시에, 무한한 도전을 격려한다. 처음부터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쓰다 틀리면 지우고, 그리다 석연찮으면 다시 시작하면 될 테니까.




연료를 채우는 마음으로 연필을 깎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크기대로 꿈을 꾸고, 그 꿈에 온전히 마음을 쏟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뎌진 연필을 정교하게 다듬는 데에는 연필깎이만 한 도구가 없을 테지만, 수월함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연필을 깎을 때만큼 손의 감각이 생생히 살아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의 인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가 잘 되기를 막연히 바라기보다, 아이 곁에 조금 밀착하여 그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어 진다. 아이를 앞지르거나 그의 몫을 대신 치르지 않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껏 그의 삶을 지지하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어야 하지 않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필을 깎았던 모양이다. 벽시계를 올려다본다. 아이들이 돌아올 때가 다 되어 가는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