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키 작은 친구가 두 손을 맞잡고 길을 간다. 잘 마른 낙엽을 사락사락 밟으며 나란히 간다.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다 우뚝 멈춰 서 소곤소곤 귀엣말을 하더니, 신나는 일이라도 떠올랐는가, 냅다 뜀박질이다.
두 친구가 걷는 길은 폭이 좁아 겨우 두 사람만 지날 수 있는 길일 성싶다. 둘만의 비밀을 나직이 속삭이게 되는 오솔길과 같은 호젓한 길. 어쩌면 이쪽으로도 저쪽 길로도 뻗어 나갈 수 있는 갈래가 많은 길일지도 모른다. 그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평화롭고 안전한 길.
친구와의 다정한 수다에 몰두한 아이가 등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앉아 있다. 그가 내보이는 뒷모습이란게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다. 하염없이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 평화와 고요를 지켜주고 싶어 뒤에서 가만 숨을 죽인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덜컥 샘이 났다. '같이 놀자'라고 넌지시 말을 걸어볼까? 나는 선뜻 나의 키 작은 친구를 데려왔다. 그러고서는 네모 반듯 잘 닦인 길로 나머지 두 친구를 잡아끌었다.
모눈 길 위에서 우리는 뜀을 뛰며 놀았다. 한 발을 내디뎠다가는 물러서고, 쫓기도 쫓기기도 하면서 종횡무진 길 위를 수놓으며 놀았다. 작은 가슴만은 설렘과 흥분으로 콩당콩당 뛰는데, 까르르 까르르르 맑은 웃음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우리가 뛰어 논 길은 어쩌면 겨울날의 눈밭이었으리. 아무도 지나지 않은 새하얀 눈의 세상. 서걱서걱 그 길을 밟고 구르며 우리는 명랑한 웃음에 취해 놀았다. 하얀 세상이 품은 최초의 즐거움을 누렸고 크고 분명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것은 다름 아닌 즐거움의 흔적이 묻어난, 명징하고 까만 발자국, 발자국.
어른들은 종종 말한다. 세상을 살아 가다 만나는 하얀 종이는 종종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언제 어느 때고 새하얀 종이를 마주할 때면 머릿속마저 새하얗게 되노라고. 그리고 여전히 그것이 두렵노라고.
부디 이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서는 겁 없이 하얀 종이를 마주할 수 있기를. 때때로 찾아 오는 기회와 도전 앞에서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대범하기를. 지난 날의 다정한 수다와 길 위에서 누린 즐거움을 상기해 내고는 의연히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길 위에서 새 세상으로 통하는 의외의 길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기를. 그 길을 함께 할 새 인연과 벗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