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삶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비대면 관계가 일상이 되면서 ‘나다움’, ‘인간다움’에 대한 갈증이 심화되고 있다.
때때로 삶이 실감나지 않는다. 알몸이 물에 잠긴 듯 노곤하고, 안경 벗은 눈으로 세상을 보듯 뿌옇다.
물건을 사는 방식만 해도 그렇다. 언제부턴가 온라인 창에서 구매를 결정한 후 실물을 대하는 일이 예사로워졌다. 겹겹이 둘린 배달 포장을 뚫고 실물을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긴장이 된다. 손에 받아 든 물건의 실체 앞에서, ‘이것이 내 모든 판단과 직관을 동원해 그려 낸 물건의 이상과 맞아떨어져야 할 텐데’ 하며 맘을 졸인다.
매달의 신성한 노동의 대가는 예의상 통장에 점만 찍고는 저마다의 용무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그것이 두둑한 돈뭉치만큼 큰 액수일지라도, 손아귀에 쥐어지지 않은 돈의 크기란 모호하기만 하다. 봉급날, 그 옛날의 아버지들처럼 뜨끈한 통닭 한 마리 가슴에 품고 집에 들어가면 그날이 조금이나마 실감날까.
온라인상에서의 인간관계는 또 어떤가. 그것은 많은 이점에도 불구, 어떤 면에선 신기루 같다. 살가운 관계를 이어가다가도, 어느 한 편이 상대의 반응에 소홀하거나 자취를 감추면 인연은 끝이 난다. 관계를 시작하는 일만큼이나 정리도 손쉽다. 이와 같은 관계의 가벼움을 무어라 설명할까? 결국 표정과 눈빛의 맞교환, 체온과 체취의 나눔, 더 나아가 살과 살의 부대낌이 부재한 관계의 한계가 아닐는지.
종이 여백을 꾸리는 일에 비하면, 모니터에 활자를 박아 넣는 일은 꽤나 삭막하다. 텅 빈 모니터 앞에서 나는 종종 부채의식을 느낀다. 미완성 문장 끄트머리에 달린 커서가 빚을 독촉하는 빚쟁이마냥 쉴 새 없이 깜빡이면, 막연한 의무감에 차가운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손아귀의 온기를 거치지 않은 활자들이 화면 위로 무심히 내려앉는다. 삐뚤빼뚤, 내 삶과 생각은 여전히 정돈되지 못한 채론데, 순백의 화면을 가득 메운 활자는 어찌 그리 단정하기만 한지. 그것들이 과연 내 삶을 온전히 투과한 나의 이야기가 맞나, 어쩐지 못 미덥다.
삶에 대한 목마름, 그 해갈의 비책은 아날로그식 삶의 비중을 늘리는 데에 있다고 본다. 혹자는 아날로그식 삶을 단순히 ‘감성을 중시하고, 느긋함을 지향하며, 옛 것을 소중히 하는 삶’ 정도로 여길지 모르겠다. 그것은 아마도 단어 ‘아날로그’가 품고 있는 ‘레트로’, ‘감성’, ‘느림’, ‘회귀’ 정도의 통념 탓이리라. 그런 식의 접근이 아예 틀렸다고는 볼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아날로그식 삶은 그 이상이다.
아날로그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간과할 수 없는 개념은 ‘연속성’이다. 아날로그란 ‘어떤 수치를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내는 방식’을 말하며, 흔히 바늘시계나 수은주, 온도계나 LP판이 그 개념을 충실히 대변해 왔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우리가 사는 매일의 삶이야말로 오롯한 아날로그가 아니던가. 오늘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특정 공간과 시간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긴밀히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날로그식 삶의 기본은 시공을 두 축으로 하는 그래프에서 현재 나의 좌표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지나온 시절을 조망하며 인생의 결핍을 능동적으로 수용하고, 삶의 무게중심을 잡고 균형을 잃지 않는 삶.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스스로의 삶을 시류에 맡기거나 흘러가는 대로 두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한때의 기억과 결핍을 돌아보며 스스로의 자화상을 마주했다. 그것은 동시에 ‘가장 나다운 삶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의 시작이기도 했다. 스스로를 잘 알게 되면서 세상을 향해 오감이 열렸다. 물건과 타인에 대해서도 더욱 애착을 두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가장 나다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삶에 근접하려 애를 썼다. 이것이 내가 경험해 온, 더 나아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아날로그식 삶의 정수다.
인간미 물씬 풍기는 삶의 글 조각들을 모아 봤다. 세상이 정해준 기준과 원칙이 아닌 내면의 소신과 감각을 따라 삶을 꾸려나가는 어느 아날로그인의 작지만 옹골찬 이야기다. 이 글을 대하는 독자마다 생의 감각을 되찾고, 온전한 나다움과 인간다움을 회복하기를 감히 바란다.
오늘도 나는 아날로그로 산다. 온전한 나다움을 위해 택한 삶의 방식, 아날로그. 我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