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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an 06. 2022

운동화 수선공을 찾습니다

아날로그는 손(手)이다

당근 거래로 딸아이 운동화를 하나 샀다. 벨크로가 부착된, 일명 찍찍이 운동화다. 빛깔이 새빨간 데다가 모양이 요염하고 착화감마저 훌륭한 스니커즈가 맘에 꼭 들었다.



새 신발을 품에 안은 날, 아이는 인생 운동화라도 만난 듯 크게 기뻐했다. 밖에 나가기도 전에 신발을 신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집안 곳곳을 누벼댔다. 다음날 아이는 청바지 밑단을 돌돌 두 번 말아 올려 복사뼈와 발목을 척 드러내더니 그 아래 빨간 새 신을 신었다. 출입문을 빠져나가는 아이 걸음이 유독 당차게 느껴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새 중고 신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벨크로 패치가 영 시원찮은가 싶더니, 급기야 두 걸음에 한 번씩 허리를 구부려 손을 대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에 판매자가 싸게 내놓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겠지. 버리고 새 걸 사?' 하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벨크로 패치를 빼고는 외관, 밑창, 깔창 등 모든  신발 부위의 상태가 멀쩡했다. 그 무엇보다 딸아이가 신발을 놓아주지 않았다. 신발을 심하게 헐떡여 가면서도 꼭 그걸 신겠단다. 꼭 그 신발이어야만 한단다.     




"그럼 엄마가 고쳐 올게."

수선을 겸하는 동네 세탁소를 먼저 찾았다. 세탁소에선 힘들다 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구두 수선소에 가면 가능할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곳에 가면 벨크로 패치를 갈 수 있는 깊이감 있는 바늘 달린 재봉틀이 있을 거라고. 도로 한편에 작게 서 있던 동네 구두 수선소가 떠올랐다. 바로 찾아 간 수선소는 날이 추워서인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희망을 가지고 하루 걸러 하루꼴로 발품을 팔아 같은 곳을 찾았다. 그러나 한번 닫힌 문은 열릴 줄 몰랐다.



다음 날은 버스를 잡아 타고 다양한 브랜드 신발을 모아 판매하는 ABC마트를 찾아갔다.

"이것 좀요, 이 신발 브랜드 AS 매장으로 보내 주실 수 있나요?"

"죄송하게도 이 브랜드는 저희 매장에서 취급하지 않아 어렵겠는데요. 이 브랜드 매장으로 직접 찾아가서 맡기시는 게 젤 빨라요."

"아, 네..."



그 자리에서 바로 검색을 해보니 놀랍게도 우리가 사는 지역구에는 해당 브랜드의 오프라인 매장 자체가 없었다. 익히 알려졌지만, 쉽게 매장을 둔 브랜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발품을 판 김에 ABC매장 인근 지하철 역 주변을 돌고 또 돌았다. 보통 역사 인근이라 하면 구두수선소 하나쯤 끼고 있을 테니까. 예상대로 두 군데를 찾았다. 그러나 역시 문이 굳게 닫힌 채였다.


             



거의 포기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버스를 잡아 탔다. 실망할 딸아이 얼굴을 떠올리며 차창 밖을 내다보는데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그곳이 눈앞을 빠르게 스쳤다. 급하게 벨을 누르고 하차했다. 반가운 마음에 숨을 헐떡이며 한 정거장 거리를 내달렸다. 아담하고 단단해 뵈는 구두수선소가 의연히 서 있었다. 문이 슬쩍 열리고 환한 불이 켜진 채로. '아저씨, 정녕 여기 계셨던 거에요? 제가 얼마나 찾아 다녔다구요!' 눈을 들어 보니 구청 인근이었다. 아, 구두 신을 일이 많은 관공소 직원들이지 참!



"아저씨, 이거 수선되나요? 찍찍이가 자꾸 떨어져서요."

"네 됩니다. 깊은 바늘로 꿰매야 해서 원래 한 짝에 4천 원 받는데, 두 짝에 5천 원만 받을게요."

"네, 그럼 해주세요."

라고 대답하면서 난 속으로 '암요. 얼마라도 드리지요. 고쳐만 주신다면요!'라고 크게 외치고 있었다.


수선공의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남겼습니다


기존 벨크로를 떼 내고 새로운 걸 달아 꿰매는 수선공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섬세하고 결이 고운 손이었다. 손의 생김만큼이나 운동화를 다루는 손길 또한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이 귀한 손을 찾아 얼마나 헤매었던가. 근 40분 가까이 묵묵히 작업에 몰두한 수선공을 바라보면서 제자들의 거칠고 더러운 발을 일일이 만져 주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떠올렸다.

"운동화를 벗을 때 찍찍이를 함부로 다루면 안 돼요. 세게 떼지 말고 끝부분부터 살살 떼 올려야 오래 가요."

수선공은 마지막으로 실밥을 정리하고, 곁으로 삐쳐 나온 벨크로 원단을 가위로 잘라 마감했다. 드디어 그가 완성된 작품을 건네는데 살짝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찮아 보이나 값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일이 있다. 크든 작든 품을 들여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건네는 일이 그렇다. 그중에서 손의 수고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지다. 손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 풀 길 없는 일이 의외로 많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길거리 구두수선소마다 자물쇠를 걸어 잠그게 된 속사정이란 혹 세상이 그 손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어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새빨간 운동화가 다시 태어난 날, 딸아이 만큼이나 내게도 그것이 각별해져서 신발 두 짝을 품에 꼭 안고 걸었다. 빨간 운동화 값은 중고가로 3,500원이었다. 그리고 수선비는 5,000원. 암, 그래야지. 그렇고 말고. 아무래도 물건보다야 물건을 다시 매만져 준 손에 더 큰 값을 쳐 드리는 것이 마땅해, 매우 마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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