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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Apr 05. 2022

후각 잃은 날

아날로그는 감각이다

화병의 꽃이 향을 잃었다. 모를 일이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늦은 저녁 남편이 치킨을 주문했다. 평소라면 치명적 냄새에 홀려 한두 조각 거들었을 텐데, 그날은 큰 유혹이 되지 않았다. 잠든 딸아이의 목덜미에 습관처럼 코를 묻었다. 그런데 아뿔싸! 그토록 향기롭고 달콤하던 아이의 체취가 사라져 있었다. 익히 알던 향으로 아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게 된 그때, 슬픔이 우레처럼 몰려왔다. 그때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었다.  



후각을 잃었다. 코로나(Covid-19)를 앓고 난 후 후각 상실 후유증이 찾아온 것.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단번에 존재감을 잃었다. 어쩌면 그것들은 그대로인데, 나라는 존재만이 옅어진 것일 수도. 박완서 작가는 「마음 붙일 곳」이란 수필에서 ‘죽어 육신이 사라진 상태의 비참함’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알아보고 느낄 수 없다면, 육신 없이 대오각성을 한들 무슨 소용이냐’ 했던 글귀가 절로 체득되었다. 몸속을 가만히 빠져나온 영혼이 세상을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익숙한 향이 증발해버린 세상은 너무 멀고도 낯설었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감정은 근원적 슬픔마저 안겨주었다.






울적해진 마음에 마스크를 단단히 끼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입과 코를 가린 그 작은 가림막  안, 일정한 들숨과 날숨에 마땅히 깃들어 있어야 할 내가 없었다. 게다가 며칠째 사용 중인 마스크가 아니냐며, 역한 입 냄새를 통해서라도 나란 존재가 실려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파트 후문 길에 들어서자 수 그루의 산유수가 가녀린 꽃망울들을 있는 힘을 다해 터뜨리고 있었다. 연노랑 안개로 가득한 봄의 산책길은 아련하고도 신비로웠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딴 세상 풍경 같았다. 산수유 꽃은 무슨 향기였더라? 어떤 향이라도 있긴 있었던가? 해마다 매번 같은 풍경을 대하며, ‘예쁘다, 예쁘다’만 되뇌었지, 그 향기를 제대로 기억해 둘 걸 그랬다. 봄의 향기를 상실한 꽃길에서 한없이 아름다운 것들의 본래 내음을 더듬느라 나는 애가 닳고, 또 닳았다.   



산길을 빠져나와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기 시작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건물 앞에서 담배를 물고 서있고, 누군가는 길빵도 서슴지 않는 동네. 아뿔사! 나는 그 뿌연 그 안갯속을 어떤 경계도 없이 걷고 있었구나! 평소라면 한 개비 니코틴의 횡포에도 신경질적으로 코를 틀어막고 날래게 그 앞을 지났을 내가 아닌가. ‘아, 후각이란 내 몸을 지키는 일종의 방어기제였구나!’ 그렇다면 커다란 보호 장구 하나를 잃은 내 몸이 보호받을 길은 무엇일까?



감각 하나가 무뎌졌을 뿐인데, 세상 모든 즐거움이 사라졌다. 음식 냄새를 맡지 못하니 불 앞에 설 의욕이 나지 않고, 손수 커피 한 잔 내릴 의미도 없어졌다.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후각은 그 자체로 얼마나 대단한 생의 유희인지! 문득 향미 좋은 커피 한 잔이 절실해졌다. 



집 떠난 후각이 고맙게도 다시 돌아와 준다면 꽃향기 가득한 에티오피아 예가체페 한 잔을 청할 테다. 그러면 한동안 우울에 잠겼던 몸과 마음과 일상이 대번에 꽃처럼 화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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