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현 Jun 05. 2022

나에게는 오빠가 없다

아날로그는 좌표 찾기다

고등학교에서만큼은 ‘대학입시’가 최우선이었다. 어디든 지방 인문계고의 상황이야 비슷했을 테지만, ‘서울대 OO명 합격’이라는 입시 성과만큼 학교 이름을 드높일 확실한 명분은 없었다. 학교는 자연히 상위권 학생들에게 기대를 모았고, 모교를 빛내 줄, 싹이 푸른 선수를 미리 탐색했다. 소수 인원을 선별하여 일찌감치 ‘특별 관리’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나도 그 중 한 명의 주자가 됐다. 걸출한 실력을 가진 선수들과 어깨를 겨루며 정해진 트랙을 내달려야 할 운명이 되었다.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자면 자기 색깔을 감추는 편이 유리했다. 어차피 다 같은 교복에, 두발 규정을 따르는 입장에서 작은 개성조차 발휘할 틈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더욱이 외모나 취미에 대해서도 신경을 껐다. 그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앉아 동요 없는 삶을 유지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라면 전략이었다.



물론 황량한 사막 벌판에서도 꽃들은 피어났다. 아무리 앞날을 들먹이며 오늘의 인고의 필요성을 설파해도 젊음의 생기란 그리 쉽게 눌러지는 게 아니었다. 여고생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일탈을 즐겼다. 분간이 갈 듯 말 듯 교묘한 색으로 머리칼을 물들인다거나, 교복 치맛단을 은근히 줄여 자신을 드러냈다. 생리적 본능에 보다 충실한 아이들도 있었다. 집에서 양푼기와 고추장, 각종 나물을 챙겨 와서는 머리를 맞대고 신나게 밥을 비벼대던, 누가 봐도 맛깨나 아는 친구들도 있었다.




H.O.T <사진출처: 나무위키>



그러나 아무리 여고시절의 모든 낙을 들먹여도, 아이돌을 빼놓고 그날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 우리 반은 H.O.T 파와 젝키(젝스키스) 파가 갈려 거의 두 동강이 나다시피 했다. 교실 전면에는 학습용 TV 한 대가 비치돼 있었는데, 팬들은 저마다 추앙하는 그룹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영상을 경쟁적으로 틀어가며 자신들의 오빠를 목 놓아 불렀다. 열과 성이 더해진 떼창의 열기는 대단해 흡사 여느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그들의 흥취와 견고한 유대가 내심 부러웠지만 나는 무소속이어야 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이라는 막연한 이유를 대고 나면 오늘 유보한 즐거움은 그럭저럭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그 후로 십 수 년이 흐른 어느 해, 그룹 해체로 각자의 길을 가던 H.O.T의 다섯 멤버가 완전체가 되어 돌아왔다. (2019년 가을,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2019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가 열렸다.) 팬들에겐 실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꽃다운 10대를 H.O.T와 함께 보낸 수많은 팬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세기를 건너 찬란한 시간을 함께 해 온 우리’라는 문구가 또렷이 새겨진 플래카드가 객석에서 힘차게 펄럭이는 날이었다.



나에겐 목 놓아 부를 오빠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쩐지 멀리서나마 그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TV 화면 앞에 다가가 앉았다. 나이 30을 훌쩍 넘긴, 결혼도 하고 아이도 하나 둘 있을 법한 아줌마들이 소녀의 때로 돌아가 ‘오빠’를 다시금 열렬히 외쳐대고 있었다. 무대마다 환호를 하고, 떼창으로 하나 된 이들은 여러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공연 내내 눈물을 쏟았다. 



그들에게 아이돌과 함께한 날들은 학창시절의 큰 부분, 어쩌면 전부였고, 지금에 와서는 삶의 확실한 일부가 되어 있었다. 인생의 같은 시간대를 지내왔지만 저들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 그것은 시대정신까진 아니어도 시대정서쯤 될 터였다. 세대의 공감대에서 크게 밀려나 있는 자신을 깨닫는 동시, 소외의 감정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20년 전 교실에서 느꼈던 것보다 훨씬 강한,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이었다. 


 




라디오와 지난 유행가


무언가를 이뤄내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줄로 알았다. 훌륭한 무엇이 되어야만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믿던 시절이기도 했다. 미처 알지 못했었다. 즐거이 자기 몫을 다한 삶이라면 대단한 무엇이 되지 않아도, 남이 알아줄 만한 큰일을 이루지 않아도 충분히 근사한 삶이란 걸. 눈앞 당면한 목표에 열중하느라 놓쳐버린 시절의 즐거움을 이제와 애달파한다. 어린 날의 공감대를 두고두고 회자하며, 어쩌면 평생의 이야깃거리 삼을 줄 알았더라면 그날의 즐거움을 그리 가벼이 여기지 않았을 것을.



이제와 틈만 나면 집안 라디오를 튼다. 애써 흘려버린, 그러나 어쩔 수없이 귀에 익은 곡조에 두 귀가 열린다. 노랫말과 함께 내가 놓쳐버린 중대한 이야기가 혹 있을까 전전긍긍이다. 그러고는 마침내 픽 웃음이 터지고야 만다. 한낱 대중가요 앞에서 촉을 세우며 진지하게 구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심경의 변화라도 겪은 사람인 것만 같아서.


 

작가의 이전글 둥근 해가 떴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