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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ul 24. 2022

몸에 맞지 않는 옷

아날로그는 좌표 찾기다

교단에 서는 일은 날마다 무대에 오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어도 초임 교사인 내겐 그랬다.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서면 수많은 눈동자가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눈들은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교사의 차림새를 재빠르게 훑어 내렸다. 

 “선생님, 오늘 몸매 죽여요.”

 “쌤은 치마보다 바지가 어울린다니까요?”

 “그 귀걸이는 오늘 옷이랑은 영 아니에요.”



저들끼리의 귀엣말이 내 귀에까지 와닿을 때도 있었다.  

 ‘쌤 앞머리 자른 것 좀 봐. 완전 초딩이다, 개초딩.’

외모와 옷차림에 무디게 살아온 내가 교사가 되어서는 하루하루 곤혹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누구보다 패션 트렌드에 민감한 여고생, 그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새내기 교사는 크지 않은 월급으로 철마다 무대의상을 마련해야 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녀석들에게 옷차림으로 책잡히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복무규정이 자못 엄격한 사립학교였다. 조금 편한 복장을 한 날이면 사람 좋다는 선배 교사 한 분이 은근히 다가와 에둘러 한 마디 던지고 가곤 했다. 



적당한 값에 구색만 겨우 갖춘 옷이 편안할 리 없었다. 정자세로 교단에 설 때는 기분이라도 났지만,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거나 보충수업, 야자 감독까지 서야 하는 날엔 말 그대로 옷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 옷들은 대개 한철 산뜻한 맛에 입고 나면 다음 해엔 어쩐지 손이 잘 안 갔다.



좀 더 제대로 된 값을 지불한다면 제 몸처럼 편안한 정장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달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학자금 상환비에 부모님 생활비, 결혼을 약속한 이의 취업준비 비용을 대는 일까지, 나는 너무 일찍부터 어깨가 무거웠다. 거기다 옷 테만 겨우 살린 어설픈 정장의 무게까지 더해졌으니...




가만 두면 한없이 이어질 평가단의 품평을 가까스로 잘라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어렵사리 빠져든 수업은 쉽게도 끝이 났다. 수업 시작종에는 한없이 무디면서도 끝 종에는 유난히 촉이 발달한 아이들. 종 치기 직전 스피커의 지글거리는 전자 잡음에 엉덩이가 들썩이더니, 이미 교실 뒷문을 빠져나가고 없다. 



‘쿵쿵쿵쿵’ 공룡 떼라도 이동하듯 굉음이 복도를 울렸다. 대군단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교내 매점. 마치 세상을 다 알듯 까칠하게 굴던 녀석들이 이렇게도 아이처럼 먹을거리에 목을 맬까. 헤아리기 힘든 사춘기 여고생의 맘이라지만, 때로는 예쁜 것과 맛있는 것이 전부인 듯 묘한 존재들이었다.



교사는 거대한 썰물이 쑥 빠져나간 텅 빈 교실에 넋 놓고 서서 ‘몸에 잘 맞는 옷’을 고민했다. 좋은 옷이란 오래도록 아껴가며 입을 수 있는, 손이 매일 가는 옷이리라. 어쩌면 처음부터 옷의 고가(估價)가 문제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결국 무대의 문제였는지도. 저마다에게 어울리는 무대가 있을 것을. 위축되지 않고 보다 자유롭게 활개 칠 수 있는 그런 너른 무대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대에 설 수만 있다면, 제 몸에 꼭 맞는 옷 또한 수월하게 찾게 될 테지.



나의 교직 첫 해는 그렇게 소란스럽게 흘러갔다. 그깟 옷차림 때문에, 내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면서. 온전히 무대를 즐기지 못한 난 주인공 깜은 못되었던 것 같다. 들러리, 혹은 조금 눈에 띄는 조연 노릇쯤은 되었을까. 그렇다고 해서 그날들이 마냥 무의미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교단 위에서 서툴게 보낸 날들은 '내가 서야 할 진짜 무대는 어디인가' 하는 진지한 고민의 시작점이기도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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