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지현 Jul 25. 2022

맛, 아날로그의 마지막 영토

아날로그는 감각이다

눈앞 화면에서 한 프로 먹방러가 네 접시 째 떡볶이를 주문했다. 그녀는 떡을 야물게 오물거리는 동시에 감탄의 눈빛과 엄지 척을 내보이며 맛의 황홀경을 표현했다. 맛의 짜릿함을 온몸으로 발산해 가면서. 거기다 세련된 카메라 기법과 생생한 ASMR이 더해지면서 맛의 세계는 한껏 미화되고 있었다.



나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화면 속 음식이 평소 내가 알고 먹던 음식이 맞는지. 차라리 이미지요, 허상은 아닌지. 혀끝 미뢰에 와닿지 않는 감각에 갈증만 커져 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맛의 실체에 안달이 났다. 그 선명한 미식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허망함이 커져 갔다. 결국 그날의 먹방은 ‘화면 속 꼭 같은 음식’을 내 입에 밀어 넣고 나서야 겨우 끝이 났다.   




이어령은 그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미각과 음식물은 디지털화할 수 없는 마지막 아날로그의 영토’라고 선언한 바 있다. 선생의 말대로 미각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의 아날로그다. 기계와 디지털이 침범할 수 없는, 오롯이 인간의 전유물인 미각은 삶에 활기를 넣어주고, 생기 잃은 삶을 살리는 구원투수가 아닐 수 없다.



주방은 종종 나의 피난처다. 글을 쓸수록 막연한 마음이 들고, 써낸 글이 무용하게 느껴질 땐 냉큼 주방으로 도망친다. 마치 곤란한 일을 당한 어린아이가 엄마의 풍성한 치마폭에 숨어버리듯 그렇게. 찬물에 찬거리를 세차게 흔들어 씻고, 도마를 힘껏 두들기고, 비릿한 밥 내에 취하다가, 지적지적 찌개 끓는 소리에 귀를 내맡기다 보면 희미해진 감각이 돌아온다. 이렇듯 주방은 맛의 본질을 꽃피우는 마법의 장이요, 아날로그의 극치다. 오감을 버무려 만든 음식을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써야 하는 이유를, 내 작은 삶을 이어 가야만 하는 이유를. -그 이유란 거창한 게 아니다. 나란 존재가 버젓이 살아 있다는 다만 그 때문이다.  



시금치와 대파 푸른대로 만든 그린포타주


냉장고는 맛의 아날로그가 응축된 작은 우주다. 냉장고 속 말라 가는 채소와 함께 내 마음도 시들어 간다. 하릴없이 주저앉은 채소에 나도 맥을 못 춘다. 식재료를 제때 처리하지 못한 게으름과 무대책. 그것은 전적으로 내 탓인 것만 같다. 하루 이틀 지나면 영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릴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아픈 가족을 뒤로하고 선뜻 집을 나설 수 없는 마음 같다.



씻어 넣어 둔 시금치를 잊고 지내는 사이 이파리가 까맣게 짓물러가고 있었다. 어찌할꼬, 발을 동동 구르는데, 언젠가 요리책에서 스쳤던 ‘*그린포타주(greenpotage)’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푸른 빛깔을 가진 채소만 있다면 충분한 요리였다. 냉큼 시금치와 대파 푸른 대를 주방으로 소환했다. 역시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양파 반쪽도. 요전 날 만들어 둔 바질페스토가 있는데 그것으로 간을 하면 맞춤이겠다.


*프랑스 요리에서의 수프의 총칭. 일반적으로는 맑은 수프인 콩소메에 대응하여 농도 짙은, 걸쭉하고 불투명한 수프를 말한다.


대파와 시금치를 쫑쫑 썰어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설설 볶았다. 가스불을 보일 듯 말 듯한 세기로 조절하고, 그 위에 팬을 올려 냄비 뚜껑을 덮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뚜껑에는 수많은 물방울이 맺혀 있고, 수북하기만 하던 채소 다발이 숨 죽어 한 줌이다. 그새 채소 진액이 빠져나와 팬이 물기로 흥건하다. 물을 조금 더 붓고 한소끔 끓였다. 핸드믹서로 재료를 갈고 바질페스토와 소금으로 간을 한 후, 치즈가루를 솔솔 뿌렸다. 부피가 크게 줄면서 농도가 진해지는 수프의 정체란 언제나 신비롭다. 식전 음식으로 몇 숟갈 뜬다면 속이 편하고 꽤 든든할 것이다.



다시 생명을 얻은 채소 덕에 내 마음도 청신해졌다. 이렇듯 가망 없어 보이는 채소를 가까스로 살려냈을 땐 삶에 대한 의지가 돋고, 일종의 생의 보람마저 느낀다. 이걸 보면 인간의 삶이란 생의 기운을 머금은 수많은 것들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게 분명하다. 냉장고 속을 비우고, 또 채워나가는 이 작은 일로 삶의 주인이 된다. 냉장고를 말끔히 비우고 나면 좋아하는 것들로 당장 그 속을 채우고 싶어 진다. 그렇게 삶을 이어간다.  


작가의 이전글 몸에 맞지 않는 옷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