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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May 02. 2023

네 마음의 필터가 되어

필터링에 대하여

집은 모름지기 여과의 장소다. 숨을 내쉬는 일에서부터 씻고 먹고 마시는, 생활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필터링되는 곳. 세탁기의 먼지망은 날마다 옷가지에 들러붙은 먼지를 걸러낸다. 청소기는 크고 작은 먼지를 빨아들이느라 집안 곳곳을 바삐 움직인다. 미세 먼지의 집안 침투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충망 위에 촘촘망을 덧대어 달았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호흡기가 약한 아이들을 위해 필터가 무려 세 개나 장착된 공기청정기를 들였다. -가장 안쪽의 숯 필터, 중간의 집진 필터, 그리고 맨 앞쪽의 기본 필터까지.- 정수기와 샤워기 필터를 정기적으로 갈아주는 일이 생활 유지의 큰 부분이 된 지는 오래다. 식수는 물론 씻는 물조차 필터를 거치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시대.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고민하다가 '집이라도 없었더라면 어쩔 뻔?' 하는 긍정으로 생각을 새로고침 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걸러지는 것이 어디 바깥 먼지와 이물질뿐일까. 하루 일과를 마친 이들이 미처 여과되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안고 집으로, 집으로 향한다. "엄마, 근데 오늘 있잖아..., 헉, 헉..." 아이들은 그날의 크고 작은 일들로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몸을 들이민다. 터지기 직전의 풍선 몸마냥 크게 부푼 감정 탓에 신발을 벗는 동시에 말의 속사포를 쏜다. 아이라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이면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른이라고 크게 다를까. 삭히지 못한 울분과 제때 걸러지지 못한 감정이 가슴에 차인 채 집안에 일단 세이프(safe) 하고 본다. 그(그녀)는 사회적 자아로 행세하느라 썼던 가면을 서둘러 벗는다. "왔어?", "별일 없었지?" 서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은체를 하고는 대개 욕실로 직진이다. 어느 위인이 '우울은 수용성'이라 말했을까. 시원하게 쏟아지는 샤워기 물줄기에 하루치 고단과 근심이 어느 정도 씻겨 내려가는 것 같다.  



식탁을 둘러앉은 이들이 먼저 입을 열겠노라 침을 튀긴다. 어떠한 규칙도 제한도 없는 우리끼리의 자유분방 속에서 대화라기보다는 감정의 토로에 가까운 시간이 한참 이어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실컷 쏟아 놓고 나면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그렇게 말하고 듣고, 또 웃고 떠들며 한바탕 이야기가 오가고 나면 속이 개운해지며 허기가 돈다. 아직 온기를 머금은 식탁 위의 음식을 마저 나누다 보면 종일 가슴에서 술렁이던 복잡한 생각과 감정들이 서서히 잦아든다. 너무 들뜬 마음은 정제되어 꼭 알맞은 크기의 아름다움이 되고, 우울과 화, 슬픔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르륵 꼬리를 감춘다.




나는 내 아이가 쏟아내는 이야기를 잘 들어내기 위해 하루 중의 에너지를 얼마간 아껴 놓는 편이다. 상당한 시간을 바깥에서 내다 돌아온 녀석들이 그 조그만 입으로 지줄대는 이야기란 끝이 없다. 한번 열린 입에서는 마치 투명 떡가래가 죽죽 뽑아져 나오듯 찰지고 매끈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아이로부터 시작된 작고 사소한 이야기는 대개 친구들과 선생님, 놀이터 형과 오빠들, 심지어 동네 강아지와 고양이에게까지 얽히고 설켜 어느덧 대단한 서사를 이룬다. 어떤 순간에 자신의 기분이 어땠는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했는지 따위의 감정이 불쑥불쑥 터져 나와 그날의 이야기를 짜게, 혹은 싱겁게도 한다.



여느 이야기꾼의 구성진 이야기라도 잘 듣는다는 것은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하물며 일의 차례나 갈피가 뒤죽박죽이고, 맥락과 이치가 잘 맞지 않는 아이의 이야기일까. '오구오구, 잘했네 잘했어',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세상에! 어쩌면 좋아' 하는 추임새로 장단을 맞추다가도 잠시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금세 흐름을 놓치고 만다. 그럼에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반응하는 일에 이리도 용을 쓰는 까닭은 꼭꼭 씹어 삼킨 밥알이 속에서 탈이 없듯, 시시콜콜 자기 속내를 일일이 뱉어낸 아이라야 별 탈 없이 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날 벌어진 이야기를 다 털어내 엄마 아빠 형제자매가 다 알게 하고서야 아이는 마음이 가벼워져 두 다리를 쭉 뻗고 잠을 잘 자게 되는 것이다.




가족은 서로에게 여과지 같은 존재다. 그날그날 상대의 기쁨과 아픔을 헤아려 주고, 그(녀)를 가장 그(녀)답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웃음의 필터, 눈물의 필터, 공감의 필터, 때론 위로와 격려라는 필터를 사용해 시시때때로 서로의 마음속 불순물을 걸러다. 필터의 성능이 좋아야 좋은 가전이듯, 잘 공감하고 반응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충분히 미더운 가족이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한 잔의 커피를 얻는 데에도 여과지 한 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지 않은가. 문득 커피에 일가견이 있는 지인이 흘렸던 말이 생각난다. "맛 좋은 커피를 내리려면 원두도 원두지만 돈 몇 천 원 더 주고 질 좋은 필터지를 쓰세요." 했던. 단지 종이 한 장을 통과 뿐인데 원두의 불순물일랑 걸러지고 좋은 성분만 모이고 모여 만들어지는 한 잔의 커피. 그 와인빛 음료 한 잔이 건네는 풍미에 나는 자주 뭉클하지 않은가. 한 장의 여과지가 가진 힘이란 이토록 큰 것이다.



부디 마음의 필터에 때가 끼지 않도록 자주 살피고 점검할 것. 이것은 살림을 한답시고 시나브로 집안에 들인 각종 필터들을 떠올리다 마침내 이른 작고도 중한 다짐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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