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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ul 03. 2023

오늘의 밥상을 차려야 할 이유

 '엄마가 아프니까 허전해'

몸이 부실해 제대로 된 밥상을 차릴 수 없게 된 날이면 내가 두 아이의 엄마인 것이 비로소 실감 난다. 어떻게든 아이들 밥은 먹여야겠고, 그렇다고 배달음식은 내키지가 않아 겨우 남아 있는 밑반찬으로 밥상을 차리기를 며칠째 이어오고 있었다.  



단순 기침감기가 아닌 기관지염이라 기침의 수위가 높았다. 호된 기침으로 어깻죽지가 다 아프더니 기침이 깊어지면서부터는 갈빗대가 흔들렸다. 머릿속 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서 있는지 컹, 컹, 울림통 큰 기침을 뱉어낼 때마다 골이 아찔하게 흔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새우처럼 등을 잔뜩 구부리고 누워 발작적인 기침을 있는 힘껏 몸 밖으로 뱉어내는 일뿐이었다. 살아보겠노라 몸부림치는 새우처럼 나는 온몸을 팔딱이며 거친 숨을 토했다.




어느 정도 자라나 집안 눈치를 살필 수 있게 된 아이들은 저희들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의 상태를 살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 이제 괜찮아?" 했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불쑥 들어와서는 "엄마가 걱정 돼서 잠시 보고 가려고."라고 말하는 게 기특했다. 딸아이는 아픈 엄마를 위해 동화책을 읽어주겠다며 머리맡에 와 앉았는데 듣고 보니 영악한 토끼가 불에 구운 돌멩이를 떡이라고 속여 호랑이를 골탕 먹인다는 그런 흔해 빠진 전래동화였다. '얘는 무슨 아픈 엄마한테 와서 이런  읽어 주나' 속으로 궁싯거리면서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단잠에 빠져들어 버렸. 더 알 수 없는 건 아침에 눈을 서는 문득 그 동화의 결말이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발바닥과 종아리를 주물러 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일은 우리만의 다정한 의식이었는데 그 소박한 일상이 어딘가로 달아나 버렸다.

"엄마, 오늘도 우리 못 재워 주지?"

"응, 잘 알면서."

아이들은 영 서운한 마음이 드는지 꼭 한번 되묻고는 풀 죽어 자기들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오히려 나는 아이들이 내게서 병이 옮을까 걱정이 되어 되도록 곁에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이들 볼에 내 볼을 부비고 그 향기로운 목덜미에 코를 박고 체취를 맡는 일이 내게는 매일의 크나큰 행복이었는데, 한 집에 살면서 아이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날도 영락없이 새우처럼 누워 가쁘게 쉼을 몰아쉬는데, 아들이 방문을 가만 열고는 슬며시 다가왔다.

"엄마 옆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 기침 옮으면 이번 주말 피구대회 어찌 나가려고."

"알아, 나도. 근데 이렇게는 괜찮지, 엄마?"

녀석이 내 등뒤로 와 가만 눕더니 양팔을 다정하게 둘러 백허그를 했다. 그러면서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아프니까 너무 허전하다."  

"허전...해?"

"으, 으응... ..."

나는 눈에서 기침보다 더 다급한, 뜨거운 무엇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아냈다. 대체 무엇이 허전하단 말일까. 요 며칠 줄어든 엄마의 잔소리일까, 아니면 부쩍 단출해진 밥상이었을까. 그때 불현듯 집안에서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부쩍 줄어든 사실을 떠올렸다. '엄마, 내 OO 어딨어?', '엄마, 이것 좀 봐봐.'. '엄마, 도와줘.', '엄마, 이건 어떡해?' 딱히 할 말이 없어도 일단 '엄마'를 불러 놓고 말의 운을 떼기 시작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랬던 것이 더이상 반응하고 대꾸해 줄 만능 엄마가 없으니 눈치껏, 요령껏 제 앞가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침이 제법 잦아들었다. 그러나 기침은 생각 이상으로 체력소모가 컸다. 깊은 피로감이 처진 몸을 자꾸만 잠의 수렁으로 잡아끌었다. 그러다 문득 요즘 딱해진 아이들의 형편을 떠올렸다. 더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정신이 바짝 났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마침 저녁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고, 오늘만큼은 아이들과 나가 먹자 생각했다.



"오늘 죽집에 가서 게살죽 어때? 엄마가 먹고 싶어서."

"좋아! 마침 죽이 땡겼어."

엄마 손을 잡고 집을 나선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고 경쾌했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아이들의 입이 뚫렸고 누구랄 것 없이 앞다투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누구누구 친구이야기, 학원을 오가며 있었던 일, 동네 산책길 강아지와 고양이의 동정, 요즘 화제의 벌레라는 러브버그 이야기까지. 그동안 쌓아만 두고 말하지 못한 그 많은 이야기가 봇물 터지듯 빠져나왔다.



시시콜콜 언제 어느 때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엄마를 아이들은 무척 그리워했던 걸까? '엄마가 아파 허전하다'는 아들의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주알고주알 엄마 앞에서 말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딸아이. 한참이나 자기 이야기를 쏟아붓고 난  아이는 안도의 숨을 푹 내쉬며, '아, 그동안 너무 답답했는데, 다 말하고 나니까 엄청 홀가분해' 했다.



 

아이들을 먹인다는 건 비단 건강한 식재료로 영양소 가득한 밥상을 내어 주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 상추와 쑥갓은 시골 할머니가 정성껏 길러 보내주신 거야.', '이건 엄마가 우연히 들른 마트에서 사봤었는데 너무 아삭해서 오늘 또 산 거 있지', '이 완두콩은 OO가 지난번에 까 주었던 건데, 기억나지? 냉동실에 얼려 놓고 이렇게 조금씩 밥에 놓아 먹으니까 좋네.' 그날 밥상에 올릴 식재료를 아이들과 함께 손질하면서 그것들이 어디서 온 건지, 그래서 얼마나 귀한 건지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리의 평범한 날들을 떠올렸다.



그런가 하면 식탁 위를 오갔던 숱한 이야기들은 또 어떤가. 다함이 없을 것만 같은 하루의 이야기를 반찬 삼아 밥알과 함께 꼭꼭 씹어 삼키다 보면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곤 했었다. '쏴쏴-' 아이들은 자신들이 깨끗이 비워 낸 그릇을 엄마가, 또 아빠가 씻어내는 물소리를 들으며 안도 속에서 또 하루를 떠나보냈을 것이었다.



뜨끈한 죽을 한 술, 또 한 술 뜨다 보니 등줄기에 땀이 쭉 배어난다. 오늘은 조금 더 기운을 내 제법 먹을 만한 밥상을 차릴 수 있을 것 같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밥상 뒤에 숨은, 오늘이 지나면 스러져 버릴 새벽 이슬 같은 이야기들을 더는 모른 척 할 수 없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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