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은 '용무를 위하여 임시로 다른 곳으로 나가는 일'이다. 사전의 뜻풀이에 기대자면 그것의 핵심은 일의 장소를 옮기는 것에 있다. 제게 주어진 의무를 당당히 받아들고서 집도 일터도 아닌 제3의 공간으로 훌쩍 떠날 수 있는 인정된 자유, 누군가의 그것이 나는 솔직히 부럽다.
옆지기는 요 몇 년 사이 해외 출장이 잦았다. 폴란드, 미국, 이스라엘, 베트남, 일본, 아랍에미리트, 스위스, 리투아니아, 영국, 프랑스... 푸른별을 한 바퀴 돌기로 작정이라도 한 사람처럼 그는 나라 밖을 도는 일에 누구보다 열심을 내는 중이었다.
한편 주부로 지내는 나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인지라 출장을 떠날 일이 없다. 처음에는 명목 있는 외박을 일삼는 그를 그저 시샘했다. 그러다 곧 그것이 남은 자에게조차 얼마간의 자유를 허락한다는 걸 깨닫고는 그의 부재를 즐기기로 했다. 해외로 떠나는 그의 긴 외출에 기꺼이 대리만족 하기로 말이다.
그의 부재는 공적 부재다. 애초 개인적 의도나 선택과는 거리가 먼 일이기에 그의 빈자리마저도공적 여운을 띤다. 부부가 잠시 물리적 거리를 두고 지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기, 서로가 상대로부터 벗어나 얼마간의 해방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조금 특별한 날들인 것이다.
가족 한 사람의 부재는 즉시 집안 기류에 변화를 낳았다. 남편의 묵직한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집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었다.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는 아빠의 부재로 집안은 허전했고 적막의 기운마저 감돌았다.
그럼에도 주부가 체감하는 집안일의 무게는 한결 가벼워졌다. (그가 들으면 서운할 이야기겠지만) 네 식구가 복작대다 한 사람이 자리를 뜬 공간에는 숨통이 트였다. 그가 벗어두고 나간 잠옷가지를 더는 주섬주섬 챙겨놓지 않아도 되었다. 빨랫감을 구분해 세탁할 일도 줄었다. 아이들이 잘 먹어줄 만한 반찬 두어 가지만 놓아 종종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어른 찬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상차림이란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었다.
두 나라 간 크게 벌어진 시차로 하루 한 번 이상의 통화가 어려운 날들이었다. 아이들은 간간이 아빠 목소리를 들었고, 폰 화면 너머로 외국땅의 정취를 어렴풋이 느꼈다. 그러다 아빠의 부재가 꼭 나흘째 되던 날, 작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낮에 씩씩하게 잘 놀던 아이가 잠에 드는가 싶더니 그리움의 정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의 부재가 더는 오랠 수 없음을 아이의 눈물이 말해주고 있었다.
느리게나마 우리만의 질서와 리듬을 찾아가고 있을 무렵 곧 비행기가 뜬다는 메시지가 날아왔다. 얼마 후면 집 떠난 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현관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올 것이었다. 일주일치 쌓인 빨랫감을 한 보따리 안아 들고서. 앗뿔싸, 집안일이 줄은 게 아니었어. 잠시 미뤄둔 집안일, 하릴없이 벼락치기하게 생겼군.
여기서부턴 말도 안 되는 상상. 주부로 사는 내가 어디 먼 곳으로 출장을 떠난다면, 연차도 반차도 낼 수 있다면 과연 나의 빈자리는 얼만큼일까. 나는 결코 일어날 리 없는 상황을 설정하려다가는 '에잇' 하고 고개를 털었다. 하루도 안 가 울먹거릴 딸아이의 얼굴이, 난장판을 방불케 할 집안꼴이 그 즉시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집안에서의 대체불가능한 인력, 그런 나 자신의 절대적 존재감. 그것이야말로 주부이자 엄마로 살아가는 이에게 단 하루치 출장도 달게 허락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다. 내게 매겨진 이 어마어마한 몸값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참, 그에게는 그새 수선해 둔 새 잠옷을 내주었다. 폭닥한 잠옷 입고 포근한 이불속으로 들어가 한잠 푹 자고 일어나라고. 여독을 제대로 풀고 나서는 어디 못 가본 나라의 사람 사는 이야기나 한번 실컷들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