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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an 19. 2024

잔반 처리, 그 신성한 의무에 대하여

살림글을 쓰게 된다면 꼭 한번 다뤄 보고 싶은 소재가 있었다. 다름 아닌 '잔반'에 관한 이야기다. 갓 지어낸 음식, 신박한 레시피, 유행하는 음식에 대해 사람들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잔반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애초 주목받지 못하고, 밥상의 중심에 오르지 못하는 대상을 굳이 화두에 올릴 것까지야, 하는 공통의 심정일 것이다.



'먹고 남은 음식', 혹은 '먹다가 그릇에 남긴 밥'을 뜻하는 잔반. 낱말의 유의어조차 '군밥', '대궁', '찬밥'이다. 낱말의 풀이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은 과연 찬밥 신세라면 왕왕 남은 반찬으로 한 끼 식사를 때우게 되는 탓이다. '잔반'이란 말이 '온전치 못한',  '부득불 누군가 해치워야 할 어떤 것'이라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품는 이유일 것이다.





카페나 식당에서는 잔반은 곧 버려질 음식이기에 두 번 시선을 두지 않는다. 잔반의 최소화를 지향할지언정 이미 남겨진 음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다. 그러나 가정에서라면 말이 달라진다. 아무리 평범한 반찬이라도 제 손으로 일일이 다듬고 양념을 치고 주물러 만든 결과물을 허투루 대할 수가 없다.




김치만 해도 그렇다. 건더기만 쏙 건져먹고 김치국물을 당연하듯 버렸던 철없던 새댁 시절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더욱이 친정엄마가 담가 주신 김치는 배추에서부터 고춧가루, 무, 마늘, 당근 모든 속재료까지 전부 손수 농사지은 채소로 만든 것인데. 김치국물을 부침개, 찌개 등에 활용할 줄을 몰랐지만 밥을 말아서라도 깨끗이 비웠어야 할 것을.



이제 나는 새 음식을 만드는 일만큼이나 남은 음식을 잘 비우는 일에 마음을 쓰는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내게 잔반은 그 자체로 완전한 음식이요, 때로 '다음 끼니'라는 숙제를 풀어낼 소중한 실마리가 되어 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렇게 하찮아 보이는 음식을 연결 고리 삼아 끼니에 끼니를 이어나가는 데에서 집밥의 묘미를 찾기도 한다.



물론 모든 잔반이 끝까지 제 구실을 하는 건 아니다. 있는 그대로 밥상에 올리기도, 새 음식에 활용하기도 마땅치 않은 날엔 혼자의 밥상에 올려 묵묵히 해결하는 편을 택한다.  



"엄마, 엄마는 우리 학교 가고 나면 집에서 뭐 해?"

이것은 학교 가는 아들이 집 밖을 나서기 전 내게 종종 물어오는 질문이다.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뭐 많지"

나는 '냉장고 속 잔반도 처리해야 해' 하고 이어 나오는 말을 나는 꿀꺽 삼키곤 한다. 매일의 식탁에서 남은 음식을 제때 해결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굳이 초등학생에게 납득시켜야 할까 싶어서다.

'아들아, 저녁에 새 밥을 짓고, 한두 가지라도 새 반찬을 내기 위해서는 어제의 그릇을 깨끗이 비워내야 한단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해.'

나는 속으로만 읇조리며 아들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짓곤 한다.




그렇게 나는 잔반 처리를 위해 종종 점심에 홀로 집에 머무른다. '먹다 남은 반찬'이라는 인상을 지우고 새 기분을 내기 위해 잔반을 싹싹 긁어모아 식판에 올린다. 색색별, 종류별 찬이 오종종 모여 만든 한 그릇 음식의 모습이 제법 그럴듯하다. 최후의 반찬으로 차려낸 혼자만의 밥상은 얼마간 비장하기까지 하다. 주부의 의무감이란 대단한 거라서 남은 멸치 하나, 파 들깨 고명 하나까지 꼼꼼히 집어 올려 꼭꼭 씹는다. 그러고도 모자라 접시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양념에 남은 밥을 마저 비벼 임무를 완벽히 완수한다. 양념까지 말끔히 비워진 그릇을 세찬 물줄기에 헹구다 보면 마침내 새 음식을 만들고픈 의욕이 솟는다.  



새 식재료와 음식으로 냉장고와 식탁을 채우는 일보다 음식을 잘 비우는 일이 갈수록 어렵고 중하게 여겨진다. 나의 주방 살림이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다면, 잔반에 관한 이야기는 엔딩크레딧이다. 화사한 식탁 위에 새 음식이 놓일 수 있게 하고 때론 음식 플레이팅을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손길. 그렇다. 잘 차려진 식탁 뒤에는 반드시 어느 누군가의 선행된 수고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잔반 처리의 수고다. 그리고 그것은 귀중한 무언가를 잘 비워낸 기쁨에 맞닿아 있는 신성한 의무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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