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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지현 Jul 19. 2023

내 살림의 최종 목적지는

요리할 줄 아는 미식가가 되길

내 살림의 최종 목표지점은 아마도 '내 아이에게 살림을 전수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모든 뒤를 봐주던 부모의 품을 떠나 어엿한 독립 개체로서 삶을 이어나가게 되었을 때 그에게 시급한 능력은 뭘까? 다름 아닌 '생활인의 소양'이 아닐까? 스스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자신의 공간을 갈무리할 줄 알며, 적절한 소비와 관리로 규모 있는 삶을 이루어 갈 줄 아는 능력. 그것은 어른이라면 마땅히 갖추고 볼 자질이요, 자신에게 부합한 일자리를 찾아 경제적 자립을 이루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생활인의 소양 중 핵심은 요리의 자질이다. 나는 독립을 이룬 내 아이가 스스로 조리해 먹을 줄 아는 사람이길 바란다.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을 먹이는, 손수 만든 음식으로 오래 기억될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우리 집 두 아이는 대체로 가리지 않고 먹는다. 쓴맛을 기본값으로 품은 봄푸성귀에서부터 구뜰한 시래기 요리, 회나 샐러드 같은 날것의 음식도 제법 즐긴다. 또래 아이들처럼 가공 식품의 화려한 맛도 환영하지만, 자연 자료의 슴슴하고 담백한 맛을 즐길 줄 아는 기특한 입맛을 가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밥 먹는 모습을 보며 한 마디씩 하곤 한다. 참 잘 먹는다고. 그런데 결혼하면 어느 누가 이런 밥상을 차려주겠냐고.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마음에 담아두었다. 둘 중 한 사람이 살림을 전담한다면 모를까, 남녀 할 것 없이 함께 일하고 함께 살림을 꾸려가는 시대에 누가 배우자의 입맛에 맞춰 매번 구색 갖춘 밥상을 차려낼 것인가. 결국 내 아이가 '요리하는 미식가'로 자라는 외엔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다.




겨우 한 치 앞을 내다본 나는 소박한 나의 주방 일상을 아이들과 공유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다양한 식재료의 맛과 향을 경험하여 미식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일이었다. 요리사가 가져야 할 덕목 중 기본은 재료 본연의 맛을 아는 일이요, 어느 누구도 자신이 아는 맛 이상의 음식 맛을 낼 수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에 촉을 세우고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식탁에 자주 올리는 일, 그 수고의 기저에는 작은 요리사를 키워내고자 하는 엄마의 작은 야망이 깃들어 있다.  



나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식재료를 함께 손질하며 놀았다. 콩을 까든 나물을 다듬던, 엄마가 먼저 판을 벌이면 아이들이 자연스레 다가와 손을 거들곤 했다. 함께 재료를 다루며 이 콩은 어디서 온 것인지- 마트에서 사 온 건지 시골 할머니가 보내신 건지- 농산물의 이력을 더듬으며 자연스레 제철 감각을 익혔다. 그랬던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조금 달라져 고민이다. 심심하다며 몸을 베베 꼬는 아들더러 '엄마랑 같이 멸치나 까자' 하니 '갑자기 할 일이 생겼다' 며 지루한 책장을 넘긴다. 식재료 손질을 더 이상 놀이가 아닌 일거리로 여기게 된 아이들과 이 일을 오래도록 함께 누릴 방법은 무얼지, 이것은 앞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  



아이가 원할 때는 기꺼운 마음으로 조리에 동참시킨다. 딸아이는 계란 요리에 있어서만큼은 수준급이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계란 푸는 일을 좋아했다. 나는 아이에게 앙증맞은 사이즈의 거품기를 선물해 주었다. 맘에 쏙 드는 조리도구를 손에 움켜쥔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계란을 풀었다. 액체도 고체도 아닌 달걀은 물성이 특이한 데다 열에도 약해 여간 까다로운 식재료지만 아이는 실수를 거듭하며 숙련되어 갔다. 이제 딸아이는 계란말이만큼은 자신 있게 해내는 수준급 요리사가 되었다.



칼 쓰는 일을 좋아하는 아들은 꽤 쓸만한 주방 보조다. '무를 나박나박 썰어 줘.' 혹은 '대파 좀 쫑쫑 썰어줘.' 하는 식으로 주문만 하면 원하는  썰어준다. 요즘은 과일을 제 힘으로 깎아먹는다. 언젠가는 차마 한 손에 쥐어지지 않는 큼지막한 복숭아 한 알을 붙들고 도마 위에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용을 쓰는 모습이 어찌나 마음 짠하던지, 어서 손도 아귀힘도 커져 능수능란해졌으면.



그러나 이 모든 일 위에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있다고 본다. 오늘도 우리는 식탁에 오른 음식을 앞에 두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엄마, 오늘 불고기 엄청 부드럽다."

"키위를 갈아 넣었거든. 단맛 낼 때 설탕 대신 키위나 배를 갈아 양념하면 육질이 엄청 연해져."

"근데 이건 생양파인데 매운맛이 하나도 안 나네?"

"응 양파를 썰어서 물에 한 10분 담가두면 매운맛과 향이 다 사라지거든."



머지 않아 성인이 될 내 아이가 충분히 준비된 독립을 이루어 한 사람 몫의 일상을 능숙하게 꾸릴 수 있기길. 섬섬옥수 아닌 투박한 손으로 요리하는 기쁨을 알고, 그 기쁨을 동력 삼아 가족과 이웃을 넉넉히 먹이는, 엄마 요리사보다 품이 큰 셰프가 되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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