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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세탁, 당일 건조

'빨래를 말린다'는 것의 의미

by 서지현

빨래만큼 계절을 타는 집안일도 없다.



젖은 옷가지가 마르려면 삼박자가 맞아야 한다. 해가 좋아야, 습도가 낮아야, 바람이 불어야. 빨래만은 세탁기를 부지런히 돌리는 주부의 열심과는 따로 도는 살림 영역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 장마철만 무사히 넘기면 그럭저럭 빨래가 말랐다. 봄가을은 해가 부족해도 기본적으로 대기가 건조하고, 겨울엔 집안에 보일러를 가동하니 거기에 조금만 힘을 보태면 그 날치 빨래를 해결 지을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때를 가리지 않고 날이 습했다. 온 나라가 연일 비에 젖어 끝이 안 보이는 터널 안에 갇혀있었다. 10월에 들어 끈덕지게 이어지던 불볕더위가 주춤해졌지만, 하늘이 갤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빨래는 더는 '마르는' 대상이 아닌 철저히 '말려야' 하는 대상이 되고 말았다.





저마다 촌음을 다투는 이른 아침 시간, '엄마 양말이 없어', '체육복이 없어', '속옷도 안 보여' 하는 소리가 이 방 저 방에서 터져 나온다. 멀쩡한 옷장에는 어찌 그리 없는 것들 투성인지, 아직 굽굽한 빨래만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건조대 위에 힘없이 걸려 있다. 매일의 빨래가 보송하게 마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힘있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걸 나는 매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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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쓸모>와 <아날로그인>을 지었습니다. 오늘 밥을 짓고, 또 문장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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