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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가 꿈꾸는 완벽한 하루

'배웅', 그리고 '맞이'

by 서지현

요샛말로 '썸을 탄다' 말해야 할까. 살림과 나는 그런 관계에 있다. 한없이 잘 지내고 싶으면서도 결코 얽매이고 싶지 않은 마음. 이것이야말로 살림에 대해 내가 오래도록 품어 온 양가의 감정이다.



살림에 대한 열심과는 별개로 주부가 맞이하는 매일의 아침이 더없이 가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버스의 만원을 버거워하는 남편이 가장 먼저 집을 빠져나가고, 중학생 아들과 초등생 딸아이가 차례로 문밖을 나서면 주부(그게 바로 나다)인 내가 마지막 주자가 되어 거침없이 집 문지방을 뛰어넘을 수 있길. 식구들이 일으킨 아침의 활기, 그 '시작'의 기세를 몰아 미련 없이 살림의 뒷문을 닫고 전환의 시간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갈 수 있길. 이것이 다름아닌 나의 아침 로망이다.






내가 꿈꾸는 아침을 굳이 '로망'이란 말로 표현한 이유는 주부가 끝없이 이어지는 살림을 뒤로하고 집안을 빠져나온다는 게 결코 만만히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지난밤 잠자리에 들기 직전까지 집정리를 한다고 종종거렸는데 아침에 맞이한 집안 풍경은 놀랍도록 새롭다.



아침으로 차린 것도 없는데 설거지는 산더미다. 방방마다 뱀 허물 같은 옷가지들이 당연하듯 널부러져 있다. 종종 변수도 있다. 부쩍 외모에 신경 쓰는 중학생 아들이 머리가 눌렸다며 한번 더 머리를 감는 통에 욕실 갈무리를 한번 더 하게 된다든가, 국이 끓어넘치는 바람에 가스레인지가 엉망이 된다던지 하는 일이다. 주부는 틈만 나면 몸을 움직이지만 시선을 돌리는 족족 미해결 과제가 눈에 밟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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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의 쓸모>와 <아날로그인>을 지었습니다. 오늘 밥을 짓고, 또 문장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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