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줄 때 예전처럼 숨이 차오르지 않는다. 아이들을 재우다가 원치 않게 함께 곯아떨어지는 일이 드물다. 한여름에도 따뜻한 커피를 찾았던 내가 가끔은 아이스 커피를 주문한다. 소화 기능이 좋아졌는지 간식을 과하게 먹었다 싶어도 다음 식사에 큰 지장이 없다. 무엇보다 반가운 사실은 줄을 넘을 때 새던 소변 양이 확연히 줄었다는 점이다. 이상은 삼 개월 가량 매일 줄을 넘으면서 내 몸에 생겨난 긍정적인 변화들이다. 극적이고 대단한 변화는 아닐지언정 출산 이후 체력적으로 내리막길을 겪던 나로서는 충분히 희망적이고 기분 좋은 일들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줄을 넘는 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동작 뒤에는 '나에 대한 몰두'가 있다. 누가 뭐래도 줄을 넘을 때만큼은 내가 나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차분히 자신을 응시하게 된다.
나란 사람은 얼마쯤 줄을 넘으면 숨이 가빠오는지, 줄을 넘을 때 어느 부위에 얼마나 힘이 들어가는지, 몸의 어떤 근육이 조여오는지, 열이 달아오를 때 몸 구석구석의 느낌은 어떠한지... 내 몸의 호흡과 맥박, 그리고 감각에 집중하는 일은 생각보다 유쾌하고 짜릿하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제자리걸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줄을 넘는 이는 줄과 함께 가파르고 완만한 경사를 몇 번이고 오르내리며 고통 중 희열, 도전과 작은 성취를 얼마간 맛보는 중이다. 가끔, 목표치를 한참이나 넘어선 날엔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수도 있다.
'내가 ADHD를 앓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때때로 나를 괴롭히곤 했다. 한때는 어엿이 교단에 서서 차분히 가르치는 일을 하던 내가 말이다. 주부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생각과 마음이 수시로 산만하게 흩어지는 삶이다.
손쉬운 설거지마저도 '엄마'하고 부르는 소리에 몇 번이고 끊기는 일이 허다하다. 책을 읽는답시고 눈은 활자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저녁 반찬은 뭐하지?' 라고 고민하며 마음만은 이미 냉장고와 주방 사이를 오간다. 자잘한 생활의 의무에 사로잡혀 몸과 마음이 수시로 허둥대는 삶의 피로감이란.
아침의 커피 한잔, 오후의 줄넘기가 내 삶의 좌표를 찾아준다.
그런 내게 줄넘기는 본연의 나로 돌아올 수 있는 좌표요, 기준점이 되어 주었다. 양손에 줄을 잡고 발로 땅을 디디고 설 때면 나란 존재가 든든하다. 삶의 무게중심이 새로이 잡힌다. 무엇보다 나는 살아 호흡하고 있으며 여전히 심장이 요동치는 존재라는 이 엄연하고도 새삼스러운 사실이란!
나, 다시 뜨거워질 수 있을까? 남은 인생, 다시는 가슴 뜨거울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하나의 줄이 가늘게 뛰는 내 심장에 이렇게나 방망이질을 해대는데, 이렇게나 펌프질을 해대는데! 뛰지 않아 뛰지 않았던 것일까? 나와 같이 심폐소생이 필요한 인간이 더러 있다.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먼저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는 것, 자신에 대한 몰두다. 고로 줄넘기는 자기 치유와 회복의 시작이기도 하다. 오늘도 기꺼이 줄을 넘는 이유는 줄 뒤에 숨은 나만 아는 보화를 캐기 위함이다. 기분 좋은 몸의 변화는 덤으로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