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줄넘기를 종종 권한다. 그러면 대개는 기꺼이 덤벼들었다가 줄 몇 개를 넘지못하고 급하게 손사래를 치곤 한다. 하나 같이 '오늘은 안 되겠다'라고 말하면서.
이쯤 되면 우리 아줌마들은 곧 눈치를 챈다. 다 같은 문제인 줄로 안다. 줄을 넘는 족족 의지와는 상관없이 새어 나오는 소변이 당황스러운 것이다. 돌발상황, 그것을 당장 감당할 요량 또한 없다. 나라고 그들과 크게 달랐겠는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배를 풍선만하게 부풀렸다가 꺼트렸으니.
내게 있어 줄넘기는 진단키트였다. 줄을 넘지 않았더라면 밑이 헐거워졌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차례의 출산을 겪으면서 골반 근육이 심히 약화된 사실도. 자가진단이 없었더라면 별다른 심각성조차 없이 남은 인생을 어영부영 살아냈을 테고.
줄을 넘기 시작하면서 몸속 상태를 면밀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경우는 복압성 요실금에 해당했다. 이것은 기침, 재채기, 줄넘기나 무거운 것을 들 때처럼 배에 힘(복압)이 가해지는 경우 의지와 상관 없이 소변을 지리는 경우다. 다소 특수한 경우에만 증상이 나타나므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묻어두고 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비정상의 상태인 것이다.
말하자면 내 몸 속에는 슬쩍 풀린 수도꼭지 하나가 있는 셈, 어떡하면 이 수도꼭지를 꼭 잠글 수 있을까? 부인과 치료나 시술 없이, 어떠한 의료기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순전히 생활 속 운동만으로 나아질 수 있을는지, 스스로 과제를 부여받은 셈이다.
줄을 본격적으로 넘기 시작했을 땐 흐르는 소변 양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했다. 줄을 넘기 직전에 용변을 봐도 소용이 없었다. 패드를 차고 나온 게 무색하기만 했다. 이론상으론 1초만 소변을 지려도 그 양이 20ml나 된다고 하니 운동 중 새는 소변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을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소변이란 게 참으로 묘하다. 보통 요의를 느껴 용변을 보고 나면 한동안은 편안해지기 마련 아닌가. 그러나 줄을 넘을 때만큼은 예외다. 두 발이 땅을 두드리는 리듬에 맞춰 그렇게 하릴없이 죽죽, 주룩주룩 소변이 샌다. '상당한 양이 흘렀으니 이쯤 되면 멈출 법도 한데.' 싶지만 한번 새기 시작한 소변 줄기는 멈출 줄을 모른다. 과연 그 끝은 어디일까, 몸속 물이 다 마를 때까지 일까? 줄을 넘으며 뜬금없이 애국가의 특정 가사를 떠올렸다. 쓴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줄넘기는 복압성 요실금의 유발 행동이자 그 자체로 치료제다. 복압성 요실금의 치료를 위해선 요도, 질, 항문 주위를 감싸고 지탱하는 골반 근육을 단련시켜야 한다. 물론 줄넘기가 골반 근육만을 집중적으로 강화시키는 운동은 아니지만 충분한 도움이 된다. 복부에 몸의 무게중심을 두면서 신체 전반의 근육을 균형 있게 단련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서서히 나아진다. 줄을 넘는 횟수가 늘수록 상황이 서서히 좋아졌다. 적어도 첫 아이 출산 후 줄을 넘으며 몸이 위아래로 울던(위로는 눈물이, 아래로는 소변이) 시절의 처참함은 면했다. 모아 뛰기를 할 때는 여전히 소변이 샌다. 그러나 번갈아 뛰기나 한발 뛰기를 할 때만큼은 몸이 편안하다. X자 뛰기와 이중 뛰기를 할 때 여전히 심하게 소변이 새는 건 어쩔 수 없다. 복부에 압이 가장 심하게 가해지는 운동 자세기 때문이다. 운동 자세를 적절하게 바꿈으로써 새는 소변의 양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매일 줄을 넘으며 몸의 상태를 스스로 진단한다. 나아가 매일 줄넘기로 몸 전체의 활력을 유지하면서 골반근육을 직접적으로 강화시킬 수 있는 운동을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 적극적으로 요실금을 치료할 수 있는 운동 말이다.
40에 임박한 나이, 하나 둘 늘어가는 새치와 주름살로 나이 듦의 흔적을 감출 순 없지만 속만큼은 단단히 여문 사람이고 싶다. 까놓고 보면 의외로 실속 있는 사람. 탄력 회복성, 이것이 바로 아줌마의 반전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