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남편이 아침 등산을 제안해 왔다. 오랜만에 산 공기도 마시고 경직된 몸도 풀고 오고 싶단다.
하루치 운동량으론 줄넘기와 동네 산책만으로도 충분했다. 게다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온 터였다. 갑작스런 산행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따지고 보면 나쁠 것도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파트 반경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아이와 내 일상에 제법 환기가 될 것 같았다.
"그래, 가벼운 코스로 다녀오지 뭐."
다만 아이들의 걸음을 생각해서 한 시간 반 남짓 걸리는 완만한 코스를 택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관악산은 역시 '악산'이었다. 흙길 아닌 돌길이라 발 한 번 잘못 디디면 발목을 접지를 판이었다. 산길을 걷는 내내 긴장이 되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이 필요했다. 한마디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집에 돌아오자 긴장이 풀렸다. 평소대로 줄을 넘을 시간이 가까워오자 몸뚱이가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오늘 줄넘기 말인데, 한 번쯤 건너뛰는 게 어때? 그보다 더한 등산을 했잖아. 아참, 너 아침에 동네도 제법 걸었지? 그럼 된 거네......'
참으로 그럴싸하고 달콤한 몸의 소리였다.
'그럴까? 그래도 되겠지? 어차피 건강 챙기자고 하는 건데 너무 무리해서 좋을 게 뭐가 있어?'
몸과 마음이 착착 죽이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딴지를 걸어왔다.
'지금은 몸의 상태나 운동의 효율을 따져가며 융통성을 발휘할 때가 아냐. 일단은 매일 줄을 넘고 봐야 해. 적당한 타협? 자기 합리화? 이런 사소한 일로 몸을 헷갈리게 만들어서야 되겠어? 몸은 일일이 다 기억한다고!'
아뿔싸. 변칙이나 예외라고는 도통 통하지 않는 교관이 내 안에 살고 있었을 줄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육체는 편한 쪽을 따르게 돼 있다. 잔머리를 굴리는 아이처럼 의뭉스럽게 구는가 하면, 때로는 고집스럽기까지 하다. 여간해선 길들여지지 않는 게 몸뚱이다. 계획과 생각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몸은 몸으로 길들여야 한다.
'타닥타닥'
결국 오늘도 줄을 넘었다. 꾸역꾸역, 조금 무딘 자세로. 평소처럼 구름 위에 붕 뜨는 기분이나 상쾌함 같은 건 없었다. 오히려 약간 화가 난 채로였다. 다만 굳은 얼굴로 몸뚱이에게, 그리고 몸 마디마디 세포와 근육에게 이렇게 선고했다.
"잘 들어. 앞으로도 줄넘기 빼먹을 일은 좀처럼 없을 거야. 그런 줄만 알아."
'매일 줄을 넘는다는 사실'이 근육에 충분히 각인될 날이 곧 올 것이다. 그때는 몸뚱이도 딴전을 피우진 않겠지. 핑곗거리를 보호막 삼아 요령 피울 궁리는 안 할 것이다. 어쩌다 하루 줄넘기를 거르기라도 하는 날이면 몸뚱이가 먼저 알아채고 이렇게 말을 걸어올지 누가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