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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 Feb 21. 2021

마케팅의 빈틈이 진심인 이유

우연히 SNS 채널에서 마사나오히라야마 사진을 봤는데, 처음 떠올랐던 첫 느낌은 ‘으잉..?’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나도 팔로잉 버튼을 누르고 만다. 피드를 쭉 보아하니 꽤 유명한가 보다. 팔로워가 6만 명이 넘는 것을 보니. 프로필에 적혀있는 작가 사이트도 들어가 보니 자신의 그림을 전시하고 굿즈도 판다. 이상한데, 괴이하기도 한데, 어설프기도 한데, 계속 보게 된다. 그림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없다. 그런데 나는 계속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이러는 이유에 대한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가 기록의 쓸모를 읽으며 '아!' 하며 정의하게 되었다.


마사나오히라야마 그림




빈틈의 중력


빈틈에는 중력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 중에, ‘말 없는 자는 상대를 수다쟁이로 만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말을 하면 내 말이 끼어들 틈이 없죠. 상대가 과묵하면(하지만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신호를 주면) 나도 모르게 그 틈을 메우려 들게 됩니다. 이것은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콘텐츠든 수신자로 하여금 들어올 여지를 주면, 나도 모르게 개입하고 싶어 지고, 일단 개입이 시작되면, 그것에 대한 관심도 달라집니다.
어떤 영화가, 노래가, 소설이, ‘저건 내 얘기야’가 되는 거죠

<기록의 쓸모> 책 내, <생각의 기쁨> 인용문


그의 그림이 심히 단순하고 어설프기까지 하니 생각이 수다스러워진다. 그리고 나 나름대로 해석하고 만다. 그렇게 그림에게 개입하고, 그림은 어떠한 의미로 분류되고 기억된다. 이게 빈틈의 중력이구나! 이러한 생각이 마케팅 영역까지 확장한다.


브랜드는 덜 위협적이 되어야 한다. 진정성이 있고 정직하고 결점을 인정해야 하며, 완벽해 보이는 척하는 걸 중단해야 한다. 디지털 세계에서 인간 중심적 마케팅은 여전히 브랜드 매력을 높이는 열쇠다.

<필립코틀러의 마켓 4.0> 


마케팅을 하다 보면 종종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내가 고객을 아는데~"


이 생각의 기반은 고객과 관련된 과거 기록(데이터)과 구전으로 내려오는 증언들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마케팅은 공급자의 관점에서 꽤 구체적이고, 디테일의 정수를 보여준다. 어떨 때는 ‘나 이만큼 너에 대해 안다’라고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이런 친절함이 고맙기도 하겠지만 어떨 때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담스럽다" 혹은, 

"피로감이 든다"


그런데 정말 고객에 대해 잘 아는 것일까?

데이터는 우리가 인지 못한 흔적까지 기록한다. 촘촘하게. 그리고 그 과거의 흔적으로 고객의 미래 행동을 예측한다. 그 과정에 현재는 있는 걸까? 정작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실세계는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이 지점이 데이터가 가지는 양면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럼 현재 고객의 생각은 어떻게 알지?

미리 알기란 쉽지 않다. 기업이 만든 상품은 하나여도 그것을 구매하고자 하는 고객의 생각은 다양하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이 부분을 빈틈으로 남겨보자. 그리고 그 빈틈을 마케팅 기획의 일부로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현재라는 빈틈에 고객이 개입하도록 대화를 걸어보는 것이다.


"당신의 과거는 알고 있지만 현재가 궁금해요. 그래야 당신과 함께하는 우리의 미래가 그려질 거 같아요"


고객이 개입하고 싶은 마케팅을 기획한다면, 브랜드와의 상호작용으로 고객 마음속에 오래 기억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일명 ‘고객이 말 많은’ 디지털 채널과 이벤트 예시를 몇 가지 찾아보았다.


김선생: ‘조금 부담스러운 챌린지’, 김선생 김밥 포장에 대한 고객의 귀여웠던 경험을 건의사항에 남기게 되면서 발단이 된 이벤트. 사연의 견주를 찾는 단계부터 김밥 포장 패키지에 대한 고객 반응과 챌린지 이벤트를 SNS 채널을 활용하여 참여와 바이럴을 유도하였다.


당근마켓: 저마다의 동네 전문가들이 왈가왈부하는 공간인 '동네생활'. 당근마켓은 지역기반의 중고거래와 가게 소개 등 비즈니스 목적에만 충실한 플랫폼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 간의 꿀팁과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동네생활'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어 브랜드에 대한 몰입과 충성도를 구축해나간다.


모빌스 그룹: 오뚜기의 밥플레이크, 롯데월드 캐릭터 리디자인 등 프로젝트를 킥오프 미팅부터 출시까지 브이로그처럼 날것의 형태로 보여준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과정에 영상을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청자의 실시간 반응과 의견을 제작 과정에 반영하기도 하며, 콜라보하는 브랜드와 모빌스 그룹에게 응원하고 몰입하게 만든다.


국순당: 국순당 마케터가 자사 제품 그리고 회사 생활에 대한 일상과 고민을 인스타툰 형태로 공유하여 소통하는 공간. 자사 제품에 대한 고객에 반응이 궁금하거나 의견을 받고 싶을 때 이 채널을 적극 활용한다.


오뚜기몰: 마케터의 늘 있는 고뇌인 바로 배너 카피. 특히 이커머스는 이 고뇌가 매일매일 일어날 것이다. 그렇게 쥐어짜서 나온 카피는 과연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가? 그것도 아닐 터… 그래서 오뚜기는 아예 배너 카피를 고객에게 맡겼다.
‘저 이제 정말 생각 안 나는데 도와주세요~’


우리가 상대방에게 애정이 생기는 순간은 그 사람이 나와 코드가 통할 때,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줄 때, 나에게 호기심을 가질 때, 나를 공감해 줄 때, 서로의 빈틈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 그 관계에 몰입하게 된다. 브랜드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고객에게 접근한다면 어떨까. 당연한 말이지만 마케터로서 일관성 있게 유지하기 힘든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빈틈을 보여주는 것이, 여백을 남기는 것이 고객에게 성의 없어 보이거나 무관심해 보이는 것이 아니다. 고객은 오히려 그 부분에서 브랜드에게 인간미를 느낀다. 고객은 거래만 성사시키려 하는 기업을 단박에 알아챈다. 그리고 고객도 그만큼의 태세로 기업을 대한다. 결국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마케팅 기획에서도 고객이 개입하는 빈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품의 훌륭함만을 빼곡하게 알리는 것이 아닌, 그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과묵한 마케팅. 그것이 고객과 친해질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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