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말 May 04. 2022

어글리어스 : 못생겨도 괜찮아

모양이 예뻐야
맛있나요?


 최근에 알게 된 사실 하나, 애호박은 원통형의 곧게 뻗는 채소가 아니라는 것. 원래는 휘거나 퉁퉁하게 자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트에서 보는 채소와 과일이 본 모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채소와 과일은 상태에 따라 등급을 매겨진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보는 모양 자체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좀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푸드 리퍼브(Food Refub)는 음식을 뜻하는 'Food'와 재 공급품을 뜻하는 'Refurbished' 합성어로, 식재료의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외형상 흠집이 생겼을 때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푸드 리퍼브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지만 특히 눈길이 가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못난이 농산물' 구독 서비스 어글리어스이다. 애호박의 진실을 알게 된 것도 이 어글리어스 덕분이다.




어글리어스(Uglyus)

 어글리어스(최현주 대표)는 2020년 7월부터 시작한 농산물 구독 서비스이다.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한 무농약/유기농 ‘못난이 농산물’을 구독 서비스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어글리어스가 구출한 농산물은 8만 1455kg을 넘으며, 259개 농가로부터 80여 종의 농산물을 공급받아, 2만 5천여 명이 넘는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시장으로부터

외면받은 농산물

 

 어글리어스란 이름은 두 가지 뜻이 있다. 바로 '못생긴'이란 뜻과 ‘Ugly Earth’, 그러니까 농산물이 예뻐야 한다는 기준이 지구를 오염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상품성'이라는 것은 상거래를 목적으로 가치를 가지는 성질을 뜻한다. 농산물에서 상품성은 농산물 등급인데 그 등급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의해 정해지며, 그 평가 항목은 거의 외형을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똑같은 맛을 가지고 있어도 외형 때문에 ‘못난이’라는 라벨이 붙는 것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산물의 1/3(13억 톤)*이 ‘외적인 기준’이 미달해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같은 땅에서 건강하게 자랐지만 모양과 크기, 중량 등이 판매하기 용이하지 않다는 이유로 헐값에 처분되거나 폐기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못난이 농산물을 폐기할 때 발생하는 메탄과 이산화질소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며, 그 버려지는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매년 약 15조 리터의 물과 90만 톤의 비료가 낭비되고 있다고 한다.

*2019년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 통계


 그렇게 인간의 눈높이로 만들어진 기준 하에 농산물은 영문도 모른 채 버려지는 것이다. 어글리어스는 이러한 농산물을 모아 상품성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농산물의 제대로 된 가치를 알리고 소비자와 함께 더 나은 지구를 위해 활동하는 브랜드이다.



못난이 농산물의  

진짜 이야기


 어글리어스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콘텐츠를 통해 소개한다. 판매를 유도하는 콘텐츠가 아닌, 못난이 농산물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자라는 환경, 농부의 진심 어린 이야기 그리고 잘못된 지식들을 바로 잡아주어 편견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호감을 가지게 만든다.


 "애호박은 원래 완벽한 원통형으로 자라지 않습니다. 그냥 두면 조금 더 퉁퉁하게도 자라고, 휘어지기도 하죠. 우리가 아는 그 애호박은 과육이 크기 전부터 인큐베이터라고 불리는 비닐 포장을 씌워서 키운 겁니다. 심지어 재배 과정에서 비닐이 벗겨져 모양이 예쁘지 않으면, 낮은 등급 판정을 받아요. 맛과 영양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도요.

 친환경 파프리카라면 할 이야기가 하나 더 있어요. 흉터 이야기예요. 파프리카가 자라는 중에 총체벌레가 지나가면 상처가 납니다. 그 상처는 아물지만 흔적이 남아요. 마치 사람 살이 다쳤다가 흉터가 남는 것처럼요. 상한 파프리카라고 오해할 수 있지요. 최 대표는 “독한 살충제 없이 해충 피해를 견뎌냈다는 핵심 증거”라고 말해요.

 변화무쌍한 자연을 견디다 보면 채소와 과일도 상처가 나고, 아뭅니다. 생명이니까요. 그 흔적이 표피에 얼룩덜룩 보기 싫게 생기는 것이죠. 저는 그 친구들이 더 건강한 농산물이라고 믿습니다. ‘너 참 대자연에서 힘차게 살아냈구나’ ‘고생하며 버텨줬구나’는 생각에 뭉클하고요.”

-Longblack 인터뷰 중-
ⓒ게티이미지



정기 구독을 입힌

공유가치창출(CSV)


 어글리어스는 매일같이 '외형'의 이유만으로 버려지는 농산물의 가치를 알려 가치 소비를 장려하고, 건강한 농법으로 생산하는 농가를 도우며 더 나아가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으로 정기 구독 서비스를 선택했다.


  어글리어스의 구독 서비스 특징은

 매월 보낼 예정인 채소를 사전에 안내한다. 채소는 약 18종으로 구성된다. 매월 유통되는 채소 종류가 다르며, 고객은 다양한 채소를 적당한 양으로 구매해서 맛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월 어떤 채소가 올지 기다리는 것도 묘미다.

가구 규모, 먹는 상황에 따라 농산물 양(1~2인/3~4인)과, 구매 주기(매주/격주)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기호 또는 알레르기에 따라 안 먹는 채소를 제외할 수 있다.

배송된 농산물이 냉장고에서도 버려지지 않도록 해당 농산물을 활용한 푸드 레시피로 적극적인 사용을 독려한다.


 이러한 구독 서비스의 결과로 어글리어스의 누적 회원수는 2만 5천여 명이다. 월평균 성장률은 22년 기준 60%이니 꽤나 높은 편임을 알 수 있다.


 어글리어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회사가 속한 공동체의 사회적 요구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수익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동시에 추구하는 비즈니스 전략인, 공유가치창출(Creating Shared Value) 전략의 일환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매출액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아직 커가는 브랜드라 그럴 수 있겠지만, 숫자로만 이 분야의 가능성을 보고 준비 없이 뛰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최현주 대표의 바람도 반영된 듯하다. 편견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시장에서 준비 없이 뛰어드는 것은 자칫 편견을 사실로 확정 짓게 돼버릴 테니까.


Q. 구체적인 매출을 밝히는 데 조심스러운 이유가 있나요.

A. 어글리어스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 사업 아이템이 상업적인 주제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하지만 단순히 ‘대박 사업 아이템’으로만 생각하고 뛰어든다면 큰코다칠 수 있어요. 진심이 없다면 할 수 없을 정도로 노동 강도가 높고,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 마진율도 낮아요. 그래서 저희는 “우리가 얼마를 법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러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를 얘기하려 노력하고 있고요. 저는 섣불리 이 일에 뛰어든 사람들로 인해 못난이 농산물 사업에 안 좋은 선례가 남을까 봐 겁나요.

-여성동아 인터뷰 중-

 

 구독 서비스 외에도 판로를 잃거나 넘쳐나는 공급물량으로 폐기 예정인 농산물을 '못난이 상점' 긴급 구출 프로젝트를 통해 판매되기도 한다.

어글리어스의 구독 서비스 신청 단계 ⓒ어글리어스



고객과

함께 만드는 브랜드


 어글리어스는 고객의 입소문으로 홍보가 되고 있는 회사이다. 마케팅 비용은 매출의 5%가 채 안되며, 재구매 고객 비율은 22년 3월 기준 77%라고 한다.  


 그 비결은 고객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듣는다는 점이다. 사업 초반에는 설문조사를 정기적으로 해오다가 작년부터는 1:1 고객 인터뷰를 시작했으며, 개발자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나눠서 인터뷰를 할 정도로 실무에 깊게 자리 잡아 있다. 이 외에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VOC를 수집하고 있으며 유의미한 의견은 서비스에 빠르게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그 예로 채소뿐만 아니라 과일도 진행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올해 4월에 출시한 '과일박스', 1주 단위의 배송 주기 옵션, 다양한 농산물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박스 사이즈 옵션 추가, 안 먹는 채소 제외하기 등 대부분의 디테일한 옵션들이 고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추가된 것들이라고 한다.


 초기 고객분들은 대부분 사회, 건강, 비건, 환경 키워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분들이었어요. 지금도  페르소나의 고객분들의 비율이 정말 크고요. 초기 고객분들이 정말 감사한 점이 저희가 조금 실수를 하거나 미흡한 부분이 있어도  의도를  이해해주세요. 저희에게 DM으로 혹시  문제를 알고 있는지 알려주시려고 하고 고객센터로도 말씀을 주세요.

 그러면 저희는 1시간이든 2시간이든 이슈에 대해 고객과 대화를 하거든요. 굉장히 깊고 상세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쩔 때는 토론에 가깝게 얘기를 하기도 해요. 뾰족한 해답으로 마무리되지 않더라도, 이렇게 깊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희의 의도만큼은 제대로 이해하게 되시는  같고요. 저희도 고객분들과 훨씬  가깝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스몰브랜더 인터뷰 -




 부정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자신의 브랜드도 알려야 하는 숙명은 어찌 보면 지난한 과정일 수 있지만, 성공하면 강력한 브랜드 각인효과를 가진다. 수익만을 추구하는 행동이 아닌, 소비자가 지지하는 가치와 기업 비전이 일치하는데서 강력한 교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진정성만 꾸준히 잃지 않는다면 해당 분야에서 상징성이 될 수도 있다.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지만 말이다.


 한 회사의 성장과 학습을 위해 기꺼이 그 과정에 참여하는 고객들. 어글리어스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왜 고객들은 그렇게 열심히 참여할까? 바로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브랜드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요즘 소비자들은 소비하는 브랜드에도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결이 같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랜드가 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들과 더욱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다. 소비자가 관심을 보이는 문제에 대응하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 또는 캠페인을 기획함으로써 소비자와 의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어글리어스는 이 과정을 공유가치창출(CSV)의 형태로 풀어내고 있다.


 앞으로는 브랜드와 고객이 서로에게 깊숙이 관여하는 것이 곧 브랜드의 대체 불가한 자산이 될 것이라 생각해본다. 어글리어스처럼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델픽 : 차가 건네는 망각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