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라리 Apr 21. 2023

비움


나는 비우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뭐 하나 가득 채워졌던 적은 없었다.

‘채워진 적이 없는데 여기서 뭘 비워?’

그래서 비워야 하고 없애야 하는 것은 어쩐지 억울하게 느껴졌다.



비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자주 비워내고

무소유를 실천하는 사람은, 얼마 전 회의실 공용 pc바탕화면에 깔려있는 쓰레기통까지 비웠다.

필요 없는 것들을 치우지 않는 걸 참을 수 없는 성격이다.


나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건 겉치레와 외적인 조건들이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건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다양한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다.

나는 가득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채워져 있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데,

그녀는 절제하고 쉽게 욕심내지 않으며 최소한의 것에서 충분함을 느낀다.


얼마후면 그녀는 이사를 간다.

나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내 짐은 이미 처치불가하고 모든 게 없어서는 안 될 짐들이라 무엇부터 버려야 할지 심히 고민 중이다.

막막한 내가 그녀에게 이삿짐 정리는 얼마나 많은지, 정리를 시작했는지 물었다.

정리할 짐도 없고 이사전날에 준비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1박 2일 여행 가는 사람이라 해도 믿겠다.

그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닮고 싶다.



23.04.21

매거진의 이전글 화장품 하나로 드러나는 생각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