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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루 Nov 11. 2022

육아와 글쓰기

돌고 돌아 다시 글쓰기로

22년 11월 11일,

육아와 글쓰기


아내의 출산을 앞둔 어느 , 글쓰기  삶에 들어왔다. 아내의 임신과 출산을 옆에서 지켜보며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주변 이들이 같은 생애주기 경험담을 공유하며 자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말을  자주해서였다. 물론 교집합도 많았지만 내가 강조한 대목은 차집합이었다. 그때마다  ,  명에게  생각을 충실한 답변으로 옮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잡아두지 않으면 날아가버리는 말로 했다는 점은 마음에 걸렸다. 나는 아내 출산을 전후로 내가 겪고 있는 일상의 변화에 대한 생각을 정제된 글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과거 나는 글쓰기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시절까진 글쓰기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학부 전공이 영문학이었다. "공부나 운동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던 아이. 영어수업을 좋아했던 아이. 다 알아듣진 못해도, 외국 방송을 즐겨 들으며 상상력으로 여백을 채웠던 아이." 내가 되돌아본 학창 시절 내 모습이다. 전공으로 영문학을 택한 것은 '대학까지 가는데 좋아하는 걸 공부해보자'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남모를 사연이 없는 가족이 없듯, 우리 가족에도 비밀이 있다. 동생이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이 된 점은 안타깝기만 하다. 내 기억으로 동생은 2~3살쯤 되던 해, 할머니 댁에서 놀다 심한 화상을 입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동생은 몇 차례 수술을 거쳐 겨우 살아났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하게 일도 하고, 가정도 꾸렸다). 동생의 사고로 우리 가족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동생은 이후로도 병원에 자주 가야 했고, 화상부위가 머리여서 가발을 쓰고 살게 됐다. 또 그 때문인진 모르지만,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겨 청소년기에는 성장을 촉진하는 주사를 달고 살았다.


어릴 적 동생은 나보다 훨씬 밝고 건강했다. 동생, 할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내 유년시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부모님은 이런 큰 사고를 겪은 탓인지, 나와 동생에게 한 번도 무언가를 강요한 적이 없다.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가끔 학생에겐 학업이 중요하다는 원론적 말씀을 하는 정도였다. 내가 사춘기, 남들 다 겪는 질풍노도를 지나지 않았던 것은 관대한 부모님 덕분이었나 싶다. 그렇게 나는 안 되는 일에는 강박을 갖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글쓰기가 내게 처음 고통이 된 건 학부 1학년, 작문 수업 때였다. 고교 졸업까지 글이란 걸 써본 적, 아니 수능 언어영역 지문만 글로 읽어온 내게 작문은 매우 어려웠다. 신기하게도 주변 친구들은 작문 과제를 적어도 나보단 쉽게 해내는 걸 보며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이후, 교환학생 등으로 바쁘게 학부시절을 보낸 나는 건조한 리포트 작성을 제외하면 글쓰기를 해본 적 없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에는 의경으로 군생활을 하며 본 사회 갈등이 계기가 됐다.  


군 시절, 서울에는 크고 작은 집회와 시위가 연중 설과 추석을 제외한 363일 이어졌다. 그때까진 이 문제에 관심이 없던 나는 이 시기를 거치며 사회학이란 학문을 접하게 됐다. 갈등의 원인, 결과, 해법 등을 다루는 학문 분과였다. 군생활을 마칠 때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해볼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한편으론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부속품처럼 일하며 소모되는 경험을 먼저 한 지인들의 증언을 접하고,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논문으로 글쓰기를 다시 맞닥뜨렸다. 논문은 비교적 형식이 정해진 글로 글쓰기 자체가 핵심은 아니었다. 연구 문제, 방법론, 연구 결과를 논리적으로 풀어쓰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내게 큰 허들이었다. 다시 읽는 일은 거의 없지만, 당시 내 글을 보면 그때 왜 이렇게 썼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글을 써야 해서 썼지, 쓰고 싶어서 쓰진 않았던 것 같다.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고서 쓰는 일을 12년째 하고 있다. 이 일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글은 글대로 늘지 않았고,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음엔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티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나는 올해, 은수의 탄생으로 글쓰기에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됐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든 생각과 순간의 감정이 그냥 날아가는 게 아쉬웠다. 백일도 되지 않은 지금도 딱 그 시기가 아니면 휘발되는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든 잡아두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나 자신, 우리 가족에게 좋은 기록이 될 거란 생각에 글쓰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가족이 큰 동력이 되는 건 분명하다. 부족한 글을 열심히 읽고 피드백을 주는 꼼꼼한 아내 덕분에 오늘도 가족의 역사를 촘촘히 기록한다.  


아이가 성장해 이 기록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면 오늘도 글쓰기를 게을리할 수 없다. 하루하루 자라는 아이를 보며 드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모두 풀어낼 수 없는 내 부족함에 반성하며,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또 고친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며, 성장기를 학업 스트레스 없이 보낸 내가 정말 행복한 아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님께 감사하고, 지금은 은수에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기에 아이가 글을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은수야, 아빠가 우리 가족 성장기를 열심히 써 나갈게. 나중에 엄마, 아빠랑 같이 읽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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