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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시루 Nov 14. 2022

비교의 함정

우리 아이는 OO 해요

22년 11월 14일,

비교의 함정


나는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출산, 육아를 먼저 겪은 지인들을 만났다. 당시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던 육아를 친구, 선후배, 동료에게서 미리 듣고 싶어서였다. 백일이 가까워진 지금은 육아가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간 경험한 육아는 빙산의 일각일 테지만, 출산 전에 비해 우리 부부의 육아력은 레벨 업된  분명하다. '임신-출산-육아' 이어진 지난  개월은 삶의 어느 변곡점보다  진폭의 변화였다. 담담하게 하루하루를 견뎌낸 덕분에 우리는 부모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육아는 지극히 개별적 경험이다. 부모가 호소하는 육아부담은 부모가 아이와의 상호작용을 나름의 기준에서 평가해 전하는 것(아이의 기질 traits*부모의 관용 tolerance)이기에 주관적이다. 또 같은 생애주기에 있는 이들이 아니면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 많아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이해도 못한다. 여전히 초보지만 육아를 해보니, 경험담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하게 됐다. 90여 일 밖에 안 된 아이를 봐도 각 단계별로 발달이 달랐고, 이미 지나간 시기에 대한 기억은 희석될 게 뻔해서다.


"아이가 분유를 안 먹어요, 쪽쪽이를 거부해요, 바운서에 눕질 않아요, 유아차에 타면 울어요, 잠투정이 심해요, 씻길 때마다 전쟁이에요." 등등은 맘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언이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길 기대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같은 월령 아이라도 기질, 양육환경 등에 따라 전혀 다른 수준의 행동을 한다. 이는 아이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일 수 없는 핵심 이유다. "우리 아이는 OO 해요."라는 부모의 코멘트가 비교 불가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서 아이에 주위의 어떤 잣대를 대는  항상 조심스럽다. 일시적 모습에 대한 주관적 관찰을 근거로 아이를 쉽게 제단하는  같아서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의 발달을 확인하기 위해 비교를 하기도 한다. 제한된 표본  주변 지인, 매체, 인터넷 카페 등에서 보고 들은 사례를 놓고 아이를 바라본다. 하지만, 특정 잣대로 우리 아이는 이렇지라고 결론짓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모든 이들이 각자의 속도가 있듯이 아이도 각각 다르다는 점을 수시로 환기해야 한다.  


이를 알면서도, 우리도 부지불식간에 은수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고 평가했다. 은수를 순한 아이로 정의했고, 다루기 쉽다고 판단했다. 물론 아이가 순한 맛을 자주 보여줬고, 분유나 기저귀 등을 바꿔도 무던하게 잘 지냈다는 근거는 있었다. 주변에 얘기를 하면 운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가 그렇게 해주니 키우기 편할 거란 말도 이어졌다. 실제 그런 면도 있다. 아이는 50일이 지나면서 6시간 이상 통잠을 잤고, 지금은 8~9시간 이상을 자고 있다. 아이의 통잠은 부모의 새벽 노동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획기적 변화다.


그런데 아이의 행동은 무작위로 바뀌곤 했다. 이는  시기 발달에 의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복기해보면, 원래 잠을  자던 아이가 오늘은  이러지라고 생각한 우리가 잘못이었다. 성인도 그날 컨디션에 따라 수면 패턴 등이 달라지는데, 아이에게 너무 많은  바란 셈이다. 오늘도 크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괜히 아이 머리를 쓸어내리며,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고백건대, 우리도 주변의 잣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느 순간 아이를 (발달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대부분이지만) 같은 월령의 아이들과 비교한다. 앞으로 아이가 자라면서 우리는  많은 주변의 평가 기준을 접하게  것이다. 인지, 정서, 신체발달 등에서 아이가 뒤처지지 않았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에선 비교를 피할  없는 면도 있다. 그럼에도 '비교의 함정' 빠지지 않기 위해선 '아이의 다름, 각각의 속도' 인정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같다.


주변 시선  획일적 기준에서 남보다 앞서기를 바라기보다는 어느 면에서건 아이에 맞는 속도를 찾도록 도와야겠다. 어렵다! 백일도   아이를 두고 하는 생각이라고 하면 웃을지 모르겠다. 부디 아이가 아이답게, 아이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고민이다. 아이를 사회적으로 주어진 기준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이가 태어난 순간, 건강히 세상의 빛을  것에 감사한 것처럼 오늘도 아이를 그렇게 대할 결심을 해본다.


지금도, 나를 보고  웃는 아이를 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붙들고 있나 보다란 생각을 한다. 아이는 있는 그대로 부모를 보고 자신을 맡기는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불안에 휩싸인 부모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오늘도 나는 아이의 옆을 지킨다. "은수야! 엄마, 아빠도 부모가 처음이라 조금 서툴러. 이해해주렴, 그런 부모라도  옆자리를 열심히 지킬게. 사랑해, 우리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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