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가도 끝없는
22년 11월 17일,
아이 있는 삶
나는 육아를 겪은 지인들을 만나면 육아에 가장 필요한 게 뭔지 물었다. 이에는 어떤 상황에도 무너지지 않는 멘털, 아이와 끊임없이 놀아줄 수 있는 체력을 꼽은 이들이 많았다. 여태까지 경험한 바로도 육아에는 강철 멘털과 체력이 필수다. 얼핏 들으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성공 비결로도 들린다. 멘털과 체력이 워낙 기본이어서 일 테지만,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뜻으로 읽힌다.
우리 부부는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해왔기에 체력엔 자신이 있었다. 나는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할 정도로 체력관리에 진심이고, 아내도 어릴 적부터 운동을 즐겨하며 건강한 편이었다. 다만, 출산 후 아내가 힘들 거란 점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제왕절개라는 큰 수술을 했고, 임신기간 몸이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임신-출산-육아’를 거치며 아이의 건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셈이다.
아이가 예쁘고, 매일 신기한 순간이 이어지지만 힘겨워하는 아내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임신-출산-육아’가 이렇게 힘들고 아내에 큰 부담이 된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아이 없는 삶’에 더 적극적이었을 것 같다. 과거 한때 나는 아이 없는 삶을 그렸지만, 돌아보면 그에 대해선 잘 몰랐던 것 같다. 아이 없는 삶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먼저 아이 있는 삶을 이해해야 해서다. 물론 한편으론 아이를 낳는 대변화는 직접 겪지 않고선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도저히 알 수 없는 면이 있다.
아이 있는 삶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 있는 삶’에 대해 알고 아이를 낳는 사람은 적다. 내 주변을 봐도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걸로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으레 그래야 하는 걸로 알고, 어쩌다 부모가 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도 결과적으로는 아이 있는 삶을 잘 모른 채 아이를 낳았다. 차이가 있다면 아이 없는 삶을 잠시나마 그려봤고, 아이 있는 삶의 무게를 가늠하려 했다는 점이다.
아이 있는 삶에 대한 준비가 충분하지 않으면 양육 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법하다. 실제 부모에는 많은 무거운 책임이 따라서다. 아이 있는 삶을 살게 된 우리는 지난 몇 달간, 그 무게를 절감하고 있다. 또 부모가 되며 획득한 새 정체성에 이제야 조금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아직도 엄마, 아빠라는 호칭은 어색하다. 아마 앞으로 아이가 커가면 우리는 또 달라져야 할 것이다. 당장 앞에 보이는 일 하나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 사실이라, 계속 잘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겪어보니, 육아는 모든 일을 완벽히 한다는 욕심보다 그때그때를 버텨낼 내구성이 중요해 보인다. 육아에 멘털과 체력이 필요하단 말은 이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닐까? 좋은 부모가 되는 정석은 없을 테지만, 강한 멘털과 체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 좋은 부모에 가까워질 것이란 뜻으로 들린다. 뭐,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가 아이 있는 삶에 진입한 이상,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한 번에 멀리 가지 못 하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가면 언젠가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육아는 올림픽 육상 경기가 아니라 아마추어 마라톤이다. 주변의 속도가 아니라, 우리의 속도로 완주만 하면 된다. 누구보다 빨리가 아니라 끝까지 간다는 게 목표여야 한다. 오늘도 하루를 잘 넘긴 우리를 격려하고, 내일도 성실히 아이와 함께 살아갈 우리를 응원해본다.